북한에서 3.1절이란?

북한도 3.1절을 기념하지만 소위 민족최대의 명절로 자축하는 김정일의 생일날에 비하면 평범한 하루에 불과하다.

이는 3.1운동에 대한 북한의 인식과 해석이 남한과는 다르다는 것을 의미한다.

대한민국정부는 조국의 자주독립을 기원하며 목청껏 만세를 불렀던 순국선열들의 정신을 기념하고 민족정신을 앙양하기 위해 3.1절을 국경일로 정하고 공휴일로 제정했다.

북한은 1980년대까지는 3.1절을 기념해 ‘3.1인민봉기 기념보고회’ 등을 개최했지만 1990년대 이후 별다른 행사를 하지 않고 있다.

오히려 북한은 3.1운동을 ‘3.1 인민봉기’라고 부르며 언론 매체를 동원해 ‘반미반일 투쟁’을 선동함과 동시에 김일성 김정일 일가의 가계우상화에 적극 이용하고 있다.

북한은 3·1운동이 김일성의 아버지인 김형직의 주도로 평양에서 시작하였고 당시 8살에 불과한 김일성이 만세행렬에 참가하였으며, 인민학교 교과서에는 심지어 ‘앞장서 이끌었다’고 역사를 왜곡하고 있다.

“3·1 인민봉기는 평양에서의 대중적인 시위 투쟁을 첫 봉화로 하여 전국 각지에서 일어났다.

… 이때 경애하는 수령 김일성 대원수님께서는 여덟살 되시는 어리신 몸으로 반일시위에 참가하시어 삼십여리나 되는 평양 보통문 밖까지 가시었다

그래서 북한주민들은 3.1절하면 유관순이나 33인의 민족지도자가 아니라 김일성의 아버지 김형직과 어린 김일성의 모습을 먼저 떠올리게 된다.

유관순은 1999년에야 북한의 백과사전에 3.1운동 때 용감하게 싸운 여학생 정도로 짤막하게 소개된다.

존엄을 북한의 역사날조는 3.1운동에 국한되지 않고 우리의 근현대사까지 김일성 김정일 가족의 혁명역사로 모두 왜곡해 버렸다.

특히 1871년 신미양요의 발단이 된 제너럴 셔먼호 침몰 사건도 북한은 김일성의 증조부인 김응우가 주도했다고 왜곡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