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주년을 즈음하여

국방부는 지난 60년간 소년·소녀 현역병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았다. 이들이 6·25 전쟁에 현역으로 참전한 사실이 드러나면 만 18세 미만의 소년·소녀 징집을 금지하는 국제법을 위반한 것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쟁 초기 병력 부족에 시달리던 우리 군은 학도병과 소년·소녀병을 1950년 낙동강 전투 등에 대거 투입했고, 훈련도 제대로 받지 못한 이들 중 상당수가 아직 부모 그늘에 있을 10대 후반의 나이에 목숨을 잃었다. 어린 아들·딸을 자신보다 앞세운 한(恨)을 안고 살았던 이들의 부모 세대는 이미 세상을 떠났다.

정부는 소년·소녀병 출신들이 자신들의 존재를 인정하고 걸맞은 예우를 해 달라는 민원을 계속 제기하자, 6·25 전쟁 발발 50년이 되는 2000년에야 ‘참전유공자 예우에 관한 법’을 만들어 이들의 존재를 일부 받아들였다. 이 법에 따라 2008년 6월까지 2만2165명의 소년·소녀 지원병 출신이 국가 유공자 및 참전 유공자로 등록됐으며, 이 가운데 4185명은 사망하고 1만7980명이 생존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이 법은 소년·소녀병 ‘징집’ 사실을 인정하지 않은 채 이들을 모두 지원병으로 분류해 놓고 있다. 실제는 징집된 경우와 스스로 지원한 경우가 섞여 있다고 한다.

정부는 재일학도의용군은 병역 의무가 없는데도 참전한 공로를 인정해 월 100여만원의 보훈연금을 지급하고 있다. 그러나 국제법이 참전을 금지한 나이에 전쟁에 휘말려 뛰어들 수밖에 없었던 소년·소녀병은 참전명예수당 명목으로 매달 8만원씩 받고 있을 뿐이다. 전사한 소년·소녀병들의 위패를 모시거나 공적을 기리는 변변한 시설조차 마련돼 있지 않다.

대한민국이 지금 누리는 번영과 자유의 바탕에는 소년·소녀병의 희생도 깔려 있다. 나라의 명운(命運)이 벼랑 끝에 걸려 있던 상황에서 소년·소녀병을 어쩔 수 없이 전선(戰線)의 앞줄에 서게 했다면 이제라도 그들의 희생에 응분의 예우를 하고, 그에 따른 역사의 짐 역시 우리가 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