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증에서부터 해탈의 과정까지

이러한 글은 세계 어디에도 단 하나밖에 없는 글이다, 우울증에서부터 깨달음을 얻고 해탈에 이르는 과정은 내 글이 세계에서 처음이자 마지막 글로 기록이 될- 것이다, 이 글의 후반부 결론까지 이르게 되면 나의 의도와 가치를 알게 된다, 읽는 이의 이해와 편의를 위해 스트레스와 우울증, 치매에 관계된 기사에 세계적인 인물의 정보를 참고하지만, 전체적으로 검증하고 신뢰하자-는 수단일 뿐 목적은 아니다, 보다 객관적으로 신뢰해야 할 만한 그들의 예를 들어 읽는 이의 이해와 자각을 유도해야 하나 지면상의 어려움으로 모두 전달하지 못함은 유감이다, 그들이 표현한 시적 사고관의 핵심과 가치들은 이미 세계적으로 명성이 있는 전문가 집단에서 검증이 되었다, 그들의 세계관과 내면적 가치를 바르게 파악해야 우리의 인문학을 비롯하여 각계- 각층의 정신문화 수준을 높일 수 있다, 여기에 글은 그곳으로 인도하는 가장 빠르고 쉬운 길이다, 스스로의 노력과 자각이 없다면 어떠한 발전도 이루지 못한다,,인간에게 최고의 가치라고 일컷는 해탈의 사고를 체득하는 방법을 알고도 시도하지 않는다면 매우 안타까운 일이다, 우리들의 삶에서 극단적으로 겪어야 할 각종 스트레스와 우울증, 치매까지도 예방되는 것은 이러한 방법이 유일하다, 우리에게 가장 큰 두려움과 공포를 심어주는 삶과 죽음의 문제까지 명료하게 만들고 현명함을 주는 곳도 이러한 방법이 유일하기 때문이다,,그곳이 어딘가? 바로 해탈의 세계관, 시인의 사고이다,,,

내 글은 말이 쉽고 매우 간단하지만 심도가 깊은 글이므로, 시간이 넉넉할 때 차나 한잔 들어가면서 정독하기를 바란다,,삶의 의미와 목적, 그리고 인간의 가치와 미래를 위하여 천천히 음미해야 인식에 도움이 된다, 내 글 어딘가에서 자신만의 화두를 찾게 되기를 기대한다, 가장 쉽고 간단한 한마디가 명확한 깨달음을 주고 자각하게 유도한다, 지금까지 우리는 어렵게 그리고 멀리서- 일생에 그것을 찾아 헤매인다, 명심하라- 그러한 곳으로 갈수록 헛 것만 찾게 되는 것이다,

참고로-

여기에서 자주 인용되는 지식과 지혜라는 표현은, 우리가 지금까지 배우고 익힌 일반적인 가치와는 성격이 전혀 다르므로 오해가 없기 바란다, 그동안 자신이 배우고 경험하여 알고 있는 모든 것, 또는 그러한 영향에서 나오는 모든 가치를 지식으로 정의한다,,이 글에서 지혜라고 쓰이는 표현은 깨달음과 해탈에 도달한 후의 인식의 상태를 지혜라고 정의한다,,또한 세계에서 보편적으로 쓰이는 자각이라는 표현은 우리말의 깨달음과 비교되고, 우리말의 해탈이라고 불리는 표현은 그들에게 최고의 정신적인 경지를 나타내는 말이다,,여기에 종교라는 단어가 등장하는 것은 정신적 발전의 가치를 지향하는 바로 그곳에서- 자신의 의지를 시험하는 갈등과 선택의 문으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EQ 는 무엇이고 IQ는 무엇인가?

요즘에 와서 EQ가 이슈화되며 부상하고 있다,, 그동안 우리가 숭상하며 추종하여 왔던 것- IQ ( 지능) 즉 인간의 지능이 높으면 정서가 안정되고 행복 지수가 높을까? 그리고 EQ 즉 감성이 높으면 어떨까? 이들의 인간적 가치들은 과연 어떨까?,,여기서 간단하게 살펴보고 넘어가자,,,

내가 보는 시적 관점의 IQ란- 뇌구조에서 그것은 기억과 기능을 담당한다, 기억을 고정하고 기능으로 형성하는 차이를 IQ라고 정의한다, 일반적 지성을 담당하는 것을 IQ라고 하는 것이다,,반면에 감정과 가치관을 유도하고 본능과 직관을 형성하는 것은 EQ 즉 감성이다,,세계로부터 위대한 지성인들은 기본적으로 IQ( 지능)도 괜찮은( 나의 경험으로 알기에는 보통의 지능만 되어도 감성의 벽만 넘으면 반드시 위대한 지성인이 될수 밖에 없기 때문에- )데다 자신의 EQ( 감성 ) 을 넘어 절대( 해탈)의 사고관을 지녔던 것이다, 자신이 노력하여 만들어 낸 사고관으로부터 나오는 통찰력과 직관이 그것이다, 나는 그것을 세계관 또는 우주관이라고 정의한다, 따라서 우리는 세계의 그들처럼 절대의 지성에 도전해야 한다,,감성의 벽을 통과하면 도달하기 때문이다,, ( 이것은 사전에 안 나온다,,그런고로 내가 정의한 IQ와 EQ, 그것들이 머리에서 서로 조화와 균형을 이루며 도와주는 절대의 지성인을 이렇게 정리한다,,)

각각에서 뇌가 반응하는 부분이 다르듯이 재능과 성향도 사람에 따라 많은 차이를 보인다, 인간의 뇌구조는 IQ와 EQ를 담당하는 양쪽 부위가 균형과 조화를 이루면서 성장해야 한다,,그렇게 어른이 되어야 보다 현명하고 독창적인 인간으로서 가치를 발휘한다,,언제나 보다 나은 인간이란 자신의 지식을 효과적으로 극대화 시키는 지혜의 경지에 이르러야 하는 것이다,,

어릴 때 IQ 가 높고 재능이 뛰어난 영재들이 어른이 되어서 위대한 독창성을 보이지 못하는 것은 스스로 EQ를 발달시키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세계적인 명성을 얻고 사회적인 성공을 하였어도, 인간적인 완성을 이루고 독창성을 보이는 것은 별개의 문제라는 것이다, 반면에 EQ에 통달한 사람은 아무리 IQ가 낮고 재능이 없어도 최상의 가치를 지닌다, 이들은 언제나 최고의 경지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그러므로 어른이 되기 전에 반드시 자신의 완성인 감성을 체득해야 한다, 그러한 사람들은 실로 각각의 부분에서 위대한 양상으로 나타났다, 스스로의 지능에다 재능을 발견하고 감성의 벽을 초월하였던 까닭에 사고가 무한한 방향으로 발전된 것이다,

어떤 세계적인 피아니스트가 어릴 때부터 천재라는 명성이 자자했다, 그는 유명한 피아니스트로 성공하였고 성인이 된- 어느 때에 자신이 누구인지를 깨닫고 지금까지 남의 흉내만 내고 있었다고 고백했을 때- 사람들은 깜짝 놀랐다, 무릇 위대한 예술가란 아무리 탁월하다고 하여도 깨달음과 해탈의 지혜가 없다면 독창성이 없게 된다, 지식은 사회적인 것- 지혜는 인간적인 것이다, 아무리 영어를 잘하고 한문에 고사성어를 많이 알아도 인간적 가치가 발전되는 것이 아니다, 스스로의 지혜가 없는 그것은 남의 흉내만 내야하는 똥이다,

세계로부터의 위대한 그것들을 시기하고 부러워하며 맹종하고 따르는 우리들은 어떤가? 우리는 지식으로 마련된 규칙과 틀안에서 자라났다,,전통적인 사회 제도와 정신문화가 그렇게만 발달하였기 때문이다,,때문에 보다 나은 발전의 인간적 가치를 유도하는 감성을 관가한 나머지- 오직 지식으로만 삶의 가치를 규정하고 살아가게 된 것이다, 이로서 한국은 오늘날 가장 많은 사회적 문제와 기형적 문제를 양산하게 되었다, 머리에 지식만 들어차면 고정관념과 선입견을 만들고 편협한 사고를 지니게 된다, 그것은 세월이 가고 늙어 갈수록 인간의 균형감각을 떨어지게 만든다, 감정과 가치관이 기능적인 지식보다 무게의 추로 작용하며 인식의 가치를 결정하는 까닭이다, 그렇듯 지식이 출중하고 이름깨나 행세하던 사람이 늙어 갈수록 잘못된 처세와 말로 자신을 추스르지 못하고 악취를 풍기는 것은 흔히 보는 일이다,,이들이 사회적으로 비난을 받고 바닥으로 추락하는 까닭은 고정된 기억과 기능적 지식의 뿌리에서 감정적 가치관적 오류가 생기기 때문이다, 세월이 가고 늙어 갈수록 합리적 지혜의 유연성이 막히는 것이다, 지식의 그것은 끝임없이 비교시켜 자신을 이중적으로 만들고 명료한 지혜를 방해한다, 지식을 배우고 그것을 가치로 생각하며 살아가는 만큼- 균형과 조화를 유도하는 감성인 EQ 를 체득하지 못하면 그만큼 불행하게 되는 것이다, 세기의 과학자 아인쉬타인의 상대성 원리는 과학에서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그것은 철저하게 합리적이며 누구에게나 공평하고 동등하게 적용되는 것이다,,천천히 헤아려보자, 인생의 끝으로 가면서 불행하다는 것이 결정되어 있다는 것은 인간적 가치가 아니지 않은가?

자신을 알게 하는 것은 EQ- 즉 감성이다, 언제나 그것은 자신을 찾고자 하는 노력의 끝에서 스스로를 기다린다,,아무리 지능이 높고 지식이 많으며 재능이 뛰어나도 감성이 떨어지면 자신을 모르게 된다,,인간은 자신의 지혜를 모르면 현명한 삶을 살지 못한다, 문제와 핵심을 알지도 못하고 가치를 높이지 못하는 것이다, 자신의 관점에서 전체를 관장하는 지혜가 없다는 것이 인생에서 얼마나 무기력하고 가련하게 되는가? 를 미리 안다면 그대는 말도 못하고 숨이 턱~ 막힐 것이다, 그것이 무명의 삶이다, 불교에서 자주 인용되는 중생인 것이다,,( 내가 여기에 불교의 말을 예를 들어 인용하는 것은 옛날부터 우리는 그러한 말에 익숙하여 있기 때문에 보다 빠르게 이해하고 참고하리라 믿는다,,) 명료하게 해탈한 삶에서 보는 관점의 그대들은 실로 많은 문제를 양산한다,,그리하여 많이 늦기전에 지혜의 그것을 체득하고자 문제와 핵심을 배워야 한다, 이 글을 따라 오라- ,

여기에 인용한 시집과 책은 집에 있던 것으로 ( 오쇼라즈니쉬 배꼽 , 예지원 ) 이나 ( 시- ( 니체, 민음사, ) 시- ( 모래알갱이가 있는 풍경, 문학 동네 ) ( 헤세, 나나 ) 등 몇 가지를 참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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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 AP 연합뉴스

알츠하이머(노인성치매) 환자가 항정신제를 장기간 복용할 경우 환자의 사망률이 2배로 높아질 수 있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런던 킹스칼리지의 울프슨 노인성질환센터 연구진이 9일 랜싯신경학지에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2001~04년 알츠하이머를 앓는 67~100세 영국인 165명 가운데 83명은 항정신제를 꾸준히 복용하고 나머지 82명은 심리적 효과만 내는 위약(플라시보)을 먹은 결과, 1년 뒤 항정신제 복용자 39명이 사망했다. 반면 플라시보 복용 환자는 같은 기간 27명이 숨졌다. 두 집단에서 사망원인은 대부분 폐렴이었지만 복용 기간이 길수록 사망률 격차는 더욱 벌어졌다. 2년 뒤 항정신제 복용자의 54%가 사망한 데 비해 비(非)복용자 사망률은 29%, 3년 뒤에는 각각 70% 대 41%였다. 항정신제 성분은 정신분열병 치료 및 신경안정제로 쓰이는 리스페달, 소라진, 스텔라진 등이었다. 연구를 이끈 클라이브 발라드는 대부분 알츠하이머 환자의 경우 이런 약품을 복용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며 “공격성이 줄어드는 대신 사망 위험이 두 배로 높아진다면 해당 약품을 복용 하겠는가”라고 되물었다. 이전 연구에서도 항정신제를 복용하면 치매환자의 공격성과 망상이 줄어들지만 사망률이 높아질 뿐 아니라 호흡곤란과 발작 등의 부작용이 뒤따른다는 결과가 나온 바 있다. 연합뉴스 기타 기사참조, 2009, 1, 9

이혼.항우울제 사용이 노화 촉진”

美대학 연구진, 쌍둥이 376명 조사

(서울=연합뉴스) 배우자와 이혼하거나 항우울제를 사용할 경우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수년간 더 늙어 보일 수 있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미국 케이스 웨스턴 리저브 대학 연구진이 최근 일란성 쌍둥이 376명을 대상으로 조사를 실시한 결과 이혼과 약물처방, 스트레스 등 환경적 요인이 노화를 촉진하는 핵심적인 요소로 작용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고 영국 텔레그라프 인터넷판이 6일 보도했다. 2009 02,06 연합뉴스 기타 기사참조

지난해 자살로 목숨을 잃은 사람의 수는 만 2000여명. 인구 10만 명당 24.8명으로 OECD 국가 중 불명예스러운 1위를 차지하고 있고, OECD 평균과 비교했을 때도 2배 가까이 높습니다. 1990년 이후 우리나라의 자살 사망자 수가 꾸준히 증가하고 있고, 선진국에 비해서는 2배로 크게 높다고 합니다. 정부는 총 5천600억원을 투입 예방- KTV | 기타 기사참조2008.12.23 18:17

강원 중·고교생 31.4% 자살 충동 느껴
강원지역 중.고생의 31.4%가 자살 충동을 느낀 적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강원지부는 중학교 3학년 남녀 각각 330명, 고교 1학년 남녀 각각 280명 등 1천220명을 대상으로 지난달 20~24일 학생생활 개선을 위한 설문조사를 한 결과 중학생은 28.9%(남 21%, 여 37%), 고교생은 33.9%(남 27.2%,여 40.8%)가 자살 충동을 느꼈다는 응답을 했다고 14일 밝혔다.

자살 충동의 이유로는 중학생은 부모님과의 문제(39.8%), 성적(36%), 이성(5.2%) 순이나 고교생은 성적(28.8%)과 부모님과의 문제(25.5%), 친구관계(17.5%)가 주된 이유로 나타났다.

또 집단 따돌림을 당한 경험은 중학생 9.1%, 고교생 3.9%로 비교적 낮은 수준이지만 피해자 모두 ‘혼자 고민했다(중 38.7%, 고 25.9%)’라는 응답이 가장 높아 이에 대한 교육이 필요한 것으로 지적됐다.
(춘천=연합뉴스) 기타 기사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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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자 잃으면 자살률 2.6배 상승”
사별.이혼시 男, 女보다 4.4배 많이 자살

(서울=연합뉴스) 이승우 기자 = 동반 자살과 연예인의 자살이 잇따라 충격을 주는 가운데 배우자를 잃은 사람은 배우자가 있는 사람보다 자살률이 2.6배 더 높아진다는 통계가 나와 주목된다. 30일 서동우 김포한별병원 진료원장의 `우리나라 자살실태와 대책’ 보고서에 따르면 2002년 배우자와 이혼했거나 사별한 사람은 10만 명당 39.2명이 자살하는 것으로 나타나 배우자가 있는 사람의 자살률 10만 명당 15.1명보다 2.6배 높은 비율을 보였다.
연합뉴스. 기타 기사참조 2009/04/30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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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에게 문제가 있다고 생각이 되거나 부족하다고 느끼는 사람, 미래에 대하여 까닭 모르는 불안감을 가지는 사람, 각종 스트레스에 부담을 느끼며 현명하게 소화시키지 못하는 사람, 언제인가 자신에게 찾아 올 우울증과 치매를 예방하고 싶은 사람, 종교에 대한 혼란과 거부감으로 신뢰가 생기지 않은 사람, 삶과 죽음의 문제를 명확하게 알게 되기를 바라는 사람, 그 밖에 세계- 시와 서양철학, 또는 예술 방면에 관계된 인문학 등- 기타 정신적인 가치를 다루는 모든 길에서 이글을 읽어 보기를 권유한다,

삶의 길을 가다보면 생노병사와 희노애락에 놓이고, 허물을 벗지 못한 생각의 끝에서는 언제나 정신적 물질적 시간적 손실이 함께 온다, 자신도 모르게 의지는 약해지며 휘둘리게 마련이니 아무리 돈이 많거나 권력이 있고 명성이 높아도 소용이 없다, 인간은 불완전하기 때문이다, 그러한 문제로부터 각종 스트레스와 우울증, 치매가 기다리고 결국은 인간과 종교의 문제가 자신을 기다리게 된다, 자신을 알지 못하는 한- 그렇게 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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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오랜 동안 심오하고 난해한 문제와 부딪치며 선택과 갈등의 계곡을 넘어 여기 산 정상에 서 있다, 내가 그대에게 이 글을 쓰면서 쓸데없는 겸손을 부리거나 거만을 떨어야 하는가? 오늘도 나는 진실한 나무를 심는 자– 천천히! 느긋하게 그대를 기다리고 있다,, 그대가 손을 내밀어 여기에 무르익은 열매를 따 먹기까지! 왜냐하면 이글의 끝에 까지 이르면 완전한 깨달음과 진리에 도달하고 보석 같은 해탈의 길이 열려- 세계의 위대한 사고방식과 열린 지혜를 자신의 것으로 터득할 수 있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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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우울증에 걸린 주부가 딸을 두명 살해하고 자신도 자살시도,,,

오늘자 국민일보에 2006-07-07 19:06 기사참조-에 따르면 한국은 매년 10만명당 25명꼴 자살- 인구 10만명당 25명이 자살하고, 자살증가율은 세계 1위를 기록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자살 위험이 있는 우울증 환자가 100만명 정도로 추산됐으며 10대와 20대의 사망 원인 중 자살이 1,2위를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또한 서울신문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 자살 때문에 발생하는 사회·경제적 손실이 연간 3조 856억원에 이르고 환자의 작업 손실 및 자살 방지 비용 등 간접비용이 연간 2조 153 억원이나 되는 것으로 추산됐다고 한다,

일본이 우울증으로 자살하는 사람이 1년에 3만명을 넘는다는 통계 조사가 나왔으며 중국은 무려 1년에 30만명, 한국은 성인 5명중 1명이 불안에 시달리고 있다고 한다, 우울증에 걸린 사람이 자살하는 숫자는 1년에 5만명이 넘을 것으로 추산된다, 그보다 사회 문제화 되며 부가적 악영향으로 나타나는 인명과 재산상의 손실은 정신과 의사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폭발적으로 늘어 날 것으로 예상된다, 더구나 우리 문화 정서와 사회 구조에서는 말이 필요가 없을 정도이다,,,

또한 전 세계적으로 4명 중 1명꼴로 다양한 정신질환을 앓고, 현 시점에서 약 4억 5천만명이 우울증이나 정신분열증과 같은 심한 정신질환을 앓고 있으며,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환자들 중 1천만~ 2천만명이 자살을 시도해 그중 100만명이 매년 자살로 목숨을 끊었다. 이는 세계보건기구(WHO)가 공식적으로 발표한 내용이다. 언제나 우울증이 원인이 되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이것이 죽음을 유도하는 병이냐 하면 그렇치 않다, 누구라도 빠져 나올 수 있으며 보다 현명한 방법으로 빠져 나오면 깨달음과 해탈의 지혜까지 터득 할 수 있다,

( 5 )
여기에 전개 될- 내 글의 진정성과 위대한 가치를 보증하는 기사가 드디어 실렸다!

[서울= 연합뉴스 2008.02.25 09:44] 한성간 기자

우울증은 인류의 삶에 도움 되는 방어기전
질병으로만 보고 약으로 치료하려만 해서는 안돼

우울증은 일종의 방어기전으로 삶의 어려움을 이겨내는 데 도움이 된다는 이론이 나왔다.

영국 정신의학연구소의 폴 키드웰 박사는 논란이 일고 있는 저서 `슬픔의 생존법(How Sadness Survived)’에서 우울증을 고통스러운 현대의 질병으로만 생각할 것이 아니라 인류의 삶에 필요하기 때문에 인류의 진화 속에서도 수천년을 인류와 함께 명맥을 이어오고 있는 방어기전으로 봐야 한다고 주장한 것으로 영국 일간지 데일리 메일이 24일 인터넷 판으로 보도했다. 키드웰 박사는 우울증은 우리에게 새로운 삶의 통찰을 부여해 삶의 어려움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게 해 준다고 말했다.

우울증은 심한 경우 무섭고 생명까지 위협할 수 있지만 대개의 경우 단기적인 고통으로 끝나며 여기서 헤어 나오면 스스로가 처한 어려운 상황에 대응할 수 있는 새로운 방법을 찾게 된다는 것이다. 키드웰 박사는 이런 과정을 통해 창의력까지 생겨날 수 있다고 말하고 그 증거로 우울증으로 어두운 시련을 겪었던 존 스튜어트 밀, 윈스턴 처칠, 아리스토텔레스 등의 사례를 들었다. 결국 우울증은 장기적으로 볼 때 인류에게 이익이 된다는 것이 그의 결론이다. 키드웰 박사의 이러한 이론은 우울증과 슬픔에 대한 현대사회의 태도에 의문을 갖는 학자들이 늘어나는 가운데 나왔다.

이들은 의사와 제약회사들이 질병의 진단에만 지나치게 치우쳐 우울증을 질병으로 간주하고 값비싸고 해가 될 수도 있는 약으로 이를 치료하려 한다는 비판적 입장을 보인다. 작년 미국의 일부 학자들은 의사와 제약 산업이 사람의 자연스러운 감정인 슬픔을 질병으로 바꾸려하고 있다고 경고한 일이 있다. 슬픔의 상실’이라는 책을 함께 쓴 럿거스 대학의 앨런 호로위츠 교수와 뉴욕 대학의 제롬 웨이크필드 교수는 슬픔이 정상적인 감정이며 건강과 웰빙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면서 의료계에 대해 이를 인정하라고 촉구했다.

두 교수는 슬픔이 인류와 함께 하고 있는 데는 진화론적으로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기- 때문에 슬픔을 약으로 없애려 하는 것은 위험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우울증은 20명에 한 명꼴로 나타나고 있으며 4명 중 1명은 평생 중 그 어느 때에 우울증을 겪게 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미 국방부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자살을 기도하거나 자해한 수는 2100명으로, 2002년(350명)의 6배로 증가했다. 미 식품의약국(FDA)은 지난해 항우울제를 생산하는 제약사들에 “항우울제는 자살 위험을 높일 수 있다”는 경고 문구의 부착을 확대하도록 요구했다.

조지프 글렌멀런(Glenmullen) 하버드의대 심리학과 교수는 타임과의 인터뷰에서 “항우울제를 먹은 뒤 자살을 기도하는 미군 병사들의 비율이 높다는 것은 심각한 우려를 불러 일으킨다”고 말했다. 조선일보 최현묵 기자 기사참조 2008.06.06

우울증 약물 먹으니 ”성격”도 변해-
우울증 치료제를 복용하는 것이 우울증 증상을 개선하는 효과는 있는 반면 성격은 변화시킬 수 있는 부작용 역시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8일 노스웨스턴대학 연구팀이 ‘일반정신의학저널’에 밝힌 바에 의하면 노이로제성 신경증적인 성격과 외향적 성격이 우울증 발병 위험과 연관됐다,
마이데일리 기타 기사참조 2009, 12. 09

참고-
위의 기사들은 습관이나 성격에 의하여 담배나 술-을 먹어 보았다면 정신적 영향은 자신이 안다, 정신적 육체적 부작용은 당연하다, 누가 인생에 그것을 반복할 것인가? 그것은 약이 아니라 정신적인 문제이다,

( 6 )

깨달음과 해탈의 진리를 찾는다면- 더 헤매지 말고 이 길을 가게!

나는 시간이 나는 데로 우울증으로부터 깨달음을 얻고 해탈하게 되는 생생한 경험담을- 여기에 공개한다, 나는 핵심으로 요약하는 것을 좋아하는 시인이므로 작가의 소질은 없다, 그렇다면 시인은 무엇인가? 기본적으로 깨달음과 해탈에 도달해야 한다, 그것이 시인이다,,스스로 자유로운 사고와 균형을 체득하고 시공간에서 일체가 되는 사고를 지녀야 한다, 필요와 기치에 따라 그렇게 자신을 유도해야 하는 것이다,,시인의 시각에는 모든 가치들이 간단 명료한 핵심으로 요약이 된다, 그것은 시인들이 지니는 습관이며 특성이다, 왜냐하면 통찰력에 의한 직관이 발달해 있는 것이다, 나 역시 그러한 사고를 지녔다,,이러한 글을 쓰는 시인의 말은 지식에 의한 작가적 표현보다 일반적 설득력이 떨어진다, 우리는 그러한 지식적 표현에 습관 되었기 때문이다, 여기에 내 말은 지식이 아니라 지혜에서 비롯된다, 그대는 알아야 한다, 좋은 말이나 글 일수록 간단하고 명확하다, 그것이 지혜이다, 이러한 글에서 고급적이고 화려한 지식이란 오히려 인식을 흐리게 하는 미사여구에 다름이 아니다,

이 글의 모든 것은 배운 지식이 아닌 깨달음과 해탈에 도달한 앎의 지혜로부터 나온다, 이글에 필요한 것은 사실적인 경험과 확고한 신념을 통과하며 오직 그것만이 최고의 가치로 간주된다, 이 글은 한국의 인문학과 예술, 정신분석학, 심리학, 종교 등- 기타 정신적인 가치를 다루는 분야에 보다 명확한 대안과 목표를 제시하는 것이다, 따라서 보다 전문가라고 자처하는 자들의 교육적 방법과 지도, 예방과 치료의 불확실성을 스스로 검증해 보고 문제의 잘못과 오류들을 찾아내게 되리라 믿는다,,애매모호한 지식의 말과 이면으로부터 정확하고 객관적인 정보와 가치들을 밖으로 드러냄으로서 서로가 발전적인 방향으로 나아가자는 취지이다,,

나는 지금까지 내가 아는 유일한 방법보다 독창적이며 획기적으로 인간의 사고를 발전시키는 방법을 알지 못하며 아직은 세계로부터 그것의 절차나 효과가 검증되는 새롭고 구체적인 정보가 없다는 것을 유감으로 여긴다, 따라서 그대들이 내 글이 추구하는 앞으로의 과정과 목표에 집중하여 보다 객관적이며 심층적으로 연구하고, 그 보다 발전한 내용을 먼저 보게 되기를 바란다,ㅡ 그것만이 서로가 객관적으로 비교되며 인정을 받는 동시에 모든 가치들을 엎그레이드 시키는 것이다,

( 주의 )- 핵심은 맨 나중에 한다,
왜냐하면 눈치 빠른 사람들은 이미 알다시피 소위 한국의 정신문화를 선도한다는 양아치들의 짝퉁 솜씨가 어찌나 심한지.,,더구나 나의 내용은 한 치도 오도하면 안 되기 때문에,,,,,

– 글쓴이- ( 최재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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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겪는 각종 스트레스는 일반적이면서 그것은 보다 쉽게 우울증으로 연결된다, 스트레스 그것은 우울증보다 비중과 가치가 떨어지므로 여기서는 보다 우울증에 집중하겠다, 그러나 각종 스트레스는 우울증을 낳고 그것은 또한 치매를 낳느니, 모두는 연결 선상에 있는 것이기에 참고하기 바란다, 이러한 종류의 정신적인 것들은 인간에게 필연적으로 생기는 현상이다, 단지 시간의 차이일 뿐- 누구나 찾아오는 것으로 대응하는 방법에 따라 다르게 나타나기도 하지만 자신은 물론 타인에게도 영향을 주는 것이다,

며칠 전 영국의 한 의학 전문기사는 우울증이 자기보호 기전의 일종이라는 연구조사를 최초로 발표하였다, 그것은 내가 10년 전- 우울증의 정신적 고통에서 헤매다 우연히 시- 라는 도구를 방편삼아 깨달음과 해탈의 끝에 도달한 후- 10년이 지난 후에야 나온 것이다, 요즘에 내가 정신적인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이 글을 쓰는 중에 그 기사를 본 것이다, 연구 조사는 내가 우울증에서부터 해탈에 도달한 과정이 가장 빠르고 효과적이며 옳았다는 사실을 뒷받침을 해주는 명확하고 객관적인 증거이다, 더구나 의학의 본고장인 영국에서 정신과학적으로 주장하는 기사라 마음이 뿌듯하다,,

이들과 내가 함께 정신-과학적으로 그러한 문제를 연구하면 얼마나 좋을까? 근본적인 원인도 모르고 무지로 고통을 받는 사람에게 가장 빠르며 현명하고 지혜로운 방법을 안내해 줄 터인데 말이다, 묶여있던 사고로부터 스스로 문제를 풀어가며 영원한 자유와 평화를 유도하는 깨달음과 해탈의 세계에 도달하게 한다면 그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보는 것이다,

내가 그러한 경험의 과정을 겪어 뻔히 알면서도 그 보다 가장 빠르고 적당한 방법이 있는지, ( 왜냐하면 깨달음을 얻고 해탈에 도달한지 10년이 훨씬 지난 지금에서야 그때의 기억을 더듬어 가며 생생하고 설득력 있게 글로 표현하며 쓸 만한 능력이 있는지 조차의,, ) 가늠도 시간도 별로 없는 것이 조금 아쉬울 뿐이다,

때문에 일단 그때에 알고 있는 것을 기억나는 데로 이렇게 글로서 시도하는 것이다, 글을 쓰는 방법은 결코 용이하지가 않다, 모두를 자세히 표현해야 하는 것은 습관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간단명료하게 요약하는 시와 같은 지혜는 있으나 그것을 조작하고 꾸미는 지식은 없기 때문이다,,

깨달음과 해탈의 길에 도달하면 지식과 지혜의 분야가 완전하게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지혜는 통찰력의 직관으로부터 생기는 것이므로 핵심이 먼저 나온다,,그것을 부연 설명하는 것은 역순으로 글을 써야 하는 것처럼 쉽지가 않다,,간단 명료한 사고의 습관이 그렇게 만든 것이다,,내가 정신적인 분야를 안다는 것은 지식이 아니고 지혜의 분야이다, 그러나 주의하라- 지식의 상위개념이 지혜이다,,

바라기는 여기에서 내 말의 의도와 핵심, 진정성이 그대로 전달되기를 바란다, 이글이 완성으로 끝난다면 인간의 정신적 인문학적인 문제를 다루는데 있어서 세계를 통 털어도 이보다 났거나 정확한 정보가 없다, 나는 그것을 지혜의 경험으로 보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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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종 스트레스는 현대에서 기본이지만 우리에게 가장 고통스럽고 견디기 힘든 것은 우울증과 치매이다,,그것은 언제 어디서든 누구나 공통적으로 나타날 수 있는 것으로 자신은 물론 가족- 또는 타인으로부터 연관되기도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문제는 스스로 인간적 가치를 훼손하고 악영향을 주는 것이다, 사고를 하는 인간은 그것으로부터 벗어 날수가 없는 구조적 모순을 내면에 간직하고 있다, 그것은 전혀 예측되지 않은 변화로부터 오기 때문에 대응하기도 힘들고 적응하기도 어렵다,

만약 우리가 체득한 모든 지식과 경험들이 현재와 미래로부터 오는 문제를 정확히 알 수가 있다면? 우울증도 치매도 안 걸리고 자신이 알아서 안전하고 적절하게 대응할 것이다, 그것은 인간에게 최고의 명약이 될 것이며 우리는 완전하고 행복하게 살아갈 것이다,,하지만 그것은 인간의 헛된 꿈이며 영원한 희망 사항일 뿐이다, 우울증은 가장 적절한 기회에 자신에게 찾아올 것이며 시간이 가고 늙어 갈수록 무기력과 절망으로 스스로를 몰아 넣을 것이다, 그때는 이미 늦은 것- 누구도 그것으로부터 빠져 나오기 어렵다, 오직 방법은 하나- 스스로 깨달음과 해탈의 지혜를 체득해야 한다, 왜냐하면 우울증과 치매- 그것은 지식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얼마 전 20세기 석학이며 한국이 자랑하고 아시아가 자랑했다던 ( 전) 문화부 장관은 우울증으로 헤매다 종교를 붙잡고 간신히 헤어났다고 고백하였다, 그렇게 믿게 된 종교에 광고까지 더하여 말하였던 것이다, 그는 아직도 지식인들 사이에서 유명하지만 기본적인 생각의 법칙조차 모르고 있었다, 인식에도 굴곡이 있듯이 시간이 지나면 그렇게 되는 것이 당연하기 때문이다, 인식의 법칙을 모르니 그가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어쩔수가 없다, 그것은 보는 관점에 따라- 또는 시도하는 방법에 따라 그렇게 나타나기도 하고 다른 양상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시간이 가기를 참고 기다려서 본래의 위치로 가게 되지 않으면, 문제의 방법을 찾아 깨달음과 해탈에 도달하는 차이가 날 뿐이다, 그렇게 간단한 진리를 그는 마치 종교 때문에 그렇게 된 것처럼 착각하고 있었다,,그는 지식으로 완벽하게 머리를 채웠지만 소위- 개똥철학을 하는 사람보다 자신을 보호하기가 어려웠던 것이다, 그것은 자신의 머리를 가득채운 지식으로부터 찾아 왔다,,

스스로 준비가 안 되어 있는 자에게 우울증은 그렇게 찾아 온다, 그것은 견디기 어려운 인내심과 의지를 요구하기에 자신을 거부하고 부정하도록 끝임없이 유혹한다, 그러한 생각의 타성들은 도피처를 찾게 되고 고통과 괴로움의 끝에 가서야 막연히 종교라는 것이 적당하다고 생각한다, 종교는 그러한 인간을 가장 좋은 조건으로 유혹한다, 믿기만 하면 된다는 말처럼 가벼운 것이 어디에 있는가! 그러나 생사의 문제로 막다른 골목에 몰린 사람은 지프라기라도 잡는다, 그대는 아는가? 믿는다는 말조차 불완전 동사라는 것을? 물론 종교의 그것은 각자의 선택이고 자유로이 지녀야할 가치이다, 나는 전체적인 이해를 유도하기 위하여 여기에 비교의 예를 드는 것이며 오히려 그를 이해하고 싶다, 왜냐하면 내가 30대에 후반에 그랬던 적이 있었기에 말이다, 알고 보면 그것은 누구에게나 공통되는 현상으로 나타나기 때문에 더 이상 문제도 아니다, 미국의 링컨 대통령도 우울증을 겼었으며 레이건 대통령도 수년간 치매로 고생하다가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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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늙어 가면서까지 우울증과 치매의 고통을 겪기엔 많이 안타까울 뿐이다, 한국의 유교적인 문화에서 보면 우울증과 치매와 같은 정보는 쉽게 왜곡되어 버린다, 전통적인 허례허식과 자기기만, 쓸데없는 오기와 자존심이 모든 것을 감추어 버린다, 있는 사실조차 없는 것처럼 숨기는 것이다, 자신은 물론 가족이 그것을 알더라도 음성적으로 넘어 간다, 그것은 모두에게 회피하고 싶은 두려움과 고통으로 생각되는 것이다, 나는 이러한 문제의 심각성을 헤아려 보고 대응하는 방법을 알려주고 싶다, 왜냐하면 인간은 늙어 가고 죽어가는 시간이 다가 올수록 인식이 밝아지고 자유와 균형이 들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적어도 그가 20세기 한국의 석학에다 사회지도층으로 행세 하려면 보다 신중하고 선도적인 방법을 권해야 한다,,깨달음과 해탈에 도달한 나로서 그것은 현명한 방법이 아니라고 권하고 싶다, 스트레스나 우울증에서 치매로 끌고 가는 문제들은 자신을 모르기 때문에 생기는 현상이다,,때문에 먼저 자신을 알라- 고 권하고 싶다,, 그것을 명확하게 알고 나면 인간에게 왜 스트레스와 우울증이 생기고 치매가 오는지 스스로 알게 된다, 종교의 가장 중요한 가치가 있다면 먼저 자신의 가치를 알도록 유도하는 것이 전제 되어야 한다,

사회지도층의 공개적인 종교 선택은 타인에게 엄청난 영향을 끼친다, 더구나 종교의 자랑은 보다 신중해야 한다, 여러 종류의 객관적 체험과 확신을 통하여 종교를 가져도 늦지 않다,,자신조차 인정하지도 못하고 거부하게 만드는 종교가 어떠한 가치가 있는지 헤아려 보아야 한다, 종교는 어떤 종교이든 그 자체로 완전하다,,종교란 이름은 스스로 말이 없기 때문이다, 그것을 도구로 활용하는 것은 인간의 몫이다, 나조차 모르는 종교인이 누구를 선도하겠는가? 코미디 같은 결과가 나와야 하는 것이다, 주의하라! 그대여- 그들조차 확인하지 못한 약속에 이끌려 삶이 끝나는 날까지- 정신적 물질적 시간적 사기를 당하게 될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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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란 지식은 정신을 가름한다, 흔히 우리가 잘못 알고 있는 말을 잘한다는 것과 바르게 하는 것은 정신적인 차원에서 전혀 다르다, 그는 지식으로 완벽하게 머리를 채웠지만 극심한 고통의 우울증을 겪게 될 줄은 몰랐던 것이다, 그는 종교로부터 자유와 행복을 얻었을까? 그것이 자유와 행복이라면 자신으로부터 도피한 결과로 얻게 된 자기 기만적 현상이며 일시적인 것이다, 그는 인간적인 자신과 절대 가치인 종교 사이에서 갈등을 겪으며 위선적이 될 뿐이다,,그대여! 생각을 깨우쳐 청정하고 명료하게 하라! 지식으로 배워 알고 있는 말과 지혜로 알고 있는 말은 다르다, 우리는 지식에 가려진 정신적인 모순을 모른다,,

우리가 배우고 경험한 모든 지식은 이성과 감정을 만들고 생각으로 나타난다, 그러나 이같은 사실은 느낌의 일종이다, 눈으로 보는 사물의 이름이나 생각들은 지식적 가치와 추상적 이미지이다, 그것을 주시하고 관할하는 지혜의 눈이 없다면 우리는 그것이 가리키는 객관적인 사실을 모른다, 단지 지식으로 고정되고 약속된 기호로 사실과 같은 착시현상을 만들어 생각이라는 도구로 활용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을 통찰하는 현명하고 객관적인 지혜의 눈은 깨달음과 해탈의 끝에 도달해야 생긴다, 세상에 모든 지식을 알고 똑똑하다고 하여도 생기지 않는 법이다, 깨달음,,,그것은 언제나 올바른 양심과 겸허한 자세로부터 태어난다,,

자신의 내면을 성찰하여 깨달음과 해탈에 도달하라-
때문에 부처나 소크라테스는 오직 너 자신을 알라- 고 일갈하였다, 인간에게 최고의 가치는 그것이다, 지혜로 아는 나를 모른다면 각종 스트레스를 몰고 막다름으로 끌고 간다, 그것은 우울증이 되고 결국 치매를 만든다, 그것은 인간에게 지속적인 괴로움과 고통을 수반하게 만드는 가장 큰 모순이자- 스스로 풀지 못하는 지식의 아이러니이다, 자신이 우울증과 치매가 걸릴 때까지 다른 사람에게나 해당되는 문제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자신의 지식이 스스로 완전하다고 생각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병원을 돌아 보라- 그들은 환자가 되기 전까지 자신이 그렇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렇게 되기 전까지 누구보다 건강한 정신과 육체를 지녔던 것이다, 각종 스트레스는 미리 자각하고 경험을 할수 있지만 우울증과 치매는 자신도 모르는 현재의 상태로 오는 것- 그것은 더욱 가혹하다, 왜 자신이 그렇게 되는지- 도대체 무엇을 하였는지 조차 모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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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적인 문제는 애매모호하고 추상적인 가치이다, 국내를 포함하여 세계의 어떤 글에도 밖으로 드러나는 간접적인 설명만 하게 된다, 본래에 다양하고 무한한 사고를 지식의 잣대로 설명하기가 난해하기 때문이다,,그것을 정확하고 객관적인 사실로 알려면 깨달음과 해탈의 세계로 들어가야 한다, 그것은 지식의 분야가 아니라- 지혜로 알아야 하는 분야이다, 인간의 내면적인 현상을 경험적 사실로서 체득하지 못하면 코끼리 다리를 만지면서 전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것을 알고 있는 누가 아무리 설명을 잘해도 우리는 그것을 알지 못한다, 소크라테스나 부처가 너자신을 알라- 고 수세기 동안 주장하였지만 우리에게 그것은 여전히 공염불이나 마찬가지이다, 그것을 알 수 있는 방법은 스스로 지혜를 체득하는 것 뿐이다, 사실적이며 구체적인 방법을 통하여 그 길의 끝까지 가 보아야 한다, 중도에 포기하거나 끝까지 못가면 그것이 무엇인지 확인할 수가 없다, 완전하게 알거나 모르게 되는 명확한 갈래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그것에 대한 설명이나 지식적인 안내는 오히려 그곳에 접근하지 못하게 방해한다, 내 글 초반에는 인식의 밖으로 나타나는 가치를 설명하고 후반에는 내면으로 가는 가치를 설명할 것이다, 내 글은 보다 간단하고 쉬운 말로 설명하기 때문에 가장 중요한 기본이 되어 있다, 약장사 같은 말로서 현혹하지 않기에 난해하지 않다, 이러한 글에서 가장 보편적인 말을 사용해야 하는 것처럼 중요한 것이 없다,,말의 성격을 아는 사람일수록 말장난을 혐오하는데 내가 싫어하는 것이 그것이다,

다시금 주의하라! 내 말은 반드시 순수하게 믿는 것이 도움이 되므로 그렇게 하는 것이 좋다, 왜냐하면 이런 글을 이해하려고 할 때는 나에 대한 의심이나 선입견이 있는데다, 설명의 이해조차 자신의 생각에서 다양화 되며 논쟁이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내가 전하려는 의도와 핵심을 놓쳐 버리기 쉽다,,

이글대로 행하면 무한한 자유와 지혜를 체득하게 되는 것만 보장할 뿐이다, 완전한 깨달음, 초월, 해탈, 절대, 등은 최고의 경지에 도달한 후에 표현되는 말이지만, 확고하게 목표를 정하고 자신의 한계를 극복하는 과정의 끝에서야 확인되는 것이다,,

모든 것을 알고 나면 내가 왜 이런 설명을 하였는지 알게 된다, 따라서 여기에 써 놓는 글은 각자 마우스로 복사해서 가정에 보관하고 시간이 있을 때 정독하며 읽어 보기 바란다, 이 글을 토대로 깨달음과 해탈의 지혜를 체득하여 가족에게 또는 타인에게 인식의 보물로서 전해주기 바란다, 무엇보다 무한한 자유와 균형의 경지에 도달하여 인간의 본질적인 가치로서 행사하기 바란다, 내 글은 그대와 후손에게 삶의 지표가 되어 주는 동시에 소중한 보물이 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자신의 그것은 스스로 독을 만들고 흉기가 되며 자신을 보호하는 한치의 지혜도 들어 있지 않기에!,,왜냐하면 나의 말은 우리들 삶에 가장 험하고 슬픈 고통의 마지막 기회에 건너가는 유일한 다리가 되는 것이기에 말이다,

나의 말을 순수하고 정직하게 믿어주는 정답고 소박한 그대여! 그대들은 앞으로 획기적인 사고의 발전과 창의를 기약하게 된다, 여기에 써 있는 글만으로도 세상에 모든 책을 읽은 것에 가름한다,,무엇을 많이 읽어 기억하고 아는 것 보다 스스로 무엇을 알고 자유하며 창조하게 되는 것이다, 그대의 지식에 지혜를 더하기에 가장 중요한 독창성을 체득하여 절대의 지성으로서 가치를 행사하게 된다, 어떠한 부분이든 실로 그대가 약간의 재능만 있어도 그 어떤 무엇까지 최고의 상태로 도달하게 된다는 뜻이다, 자신을 알면서 인간을 알게 되기 때문이다, 세계의 그들이 핵심적으로 표현하였던 인문학적 가치와- 예술적, 심리학적, 정신과학적, 종교적 가치들을 스스로 알게 된다, 모조리 알게 된다는 뜻이다,,따라서 이글이 완성으로 끝날 때- 까지 나를 신뢰하며- ( 그것이 가장 좋은 교육적인 방법이기에,,,) 집중하고 발전하여 모두가 내 머리 위를 지나가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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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우울증에 관하여 간단하게 논하고자 한다,

의학의 본 고장인 영국의 의학 기사로 확인이 되었듯이 우울증에 대한 정신의학 기사는 내가 먼저 써 놓았던 글과 명확하게 일치한다, 우울증이란 일종의 방어기전이라는 것이다,,그것은 인간에게 자연스러운 보호 본능적 반응이라는 것이다, 기사는 우울증에 있어 매우 긍정적이고 희망적인 전망을 한 세계 최초의 것이다, 또한 우울증은 대응하는 방법에 따라 획기적이고 창조적인 발전을 가져오는 도구이기에 항우울제와 같은 어떠한 약물도 세밀한 신경세포에 안 좋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

마음의 병은 마음으로 고쳐야 심신에 가장 좋다, 뇌의 건강은 그대로 육체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생각이 왜곡되고 병들어 가는 현상은 지식적 타성이 만든 결과물이다, 문제로부터 보다 빠르고 쉽게 벗어나고자 이전의 편리함과 나태를 비교하는 것이 습관 되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끝임없이 자신을 비교하고 현실과 거리를 벌이면서 갈등과 무기력에 빠지게 만든다, 때문에 이성과 감정이 마비되면서 고통과 괴로움을 수반하는 것이다, 그것은 언제나 주관적이면서 객관적으로 문제가 된다, 이러한 문제는 언제나 진지하고 정확하게 자신을 바라보는 노력부터 해야 한다, 그렇게 시도해야 문제에 대응하는 최소한의 능력이라도 생기며 그것으로부터 벗어 날 수가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효과적인 방법은 순수와 정직으로 대변해야 한다, 그것이 깨달음과 해탈로 들어가는 문이다, 그것은 가장 먼저 조용한 울림으로 귀에 다가오지만 우리는 그것이 무엇인지 모른다, 우리는 처음의 그것에 주의를 기울이는 습관이 안되어 있다,

웃고 떠들고 흥겨운 잔치가 끝나면 우울증은 찾아 온다, 가볍고 빠르고 쉬운 지식만을 쫒다가 인생은 어느덧 노년에 이른다, 보다 많은 지식으로 머리를 채우고 완전하다고 여기던 착각 속에서 세월이 가는 것이다, 지식은 이름만으로 완전한 것- 인식에 자각증상으로 나타나지 않는다, 그리고 거기에 초대하지 않은 불청객인 우울증과 치매가 자신을 기다린다..세월은 누구도 기다려주지 않는다, 인간에게 시간 개념이란 뒤를 돌아보았을 때 확인될 뿐이다, 스스로 내면의 준비가 안 되어 있다면 모든 것이 공평하다, 그러나 인생이 끝으로 가면서 끝임없이 고통을 받는다면 더욱 서글프지 않은가? 심신의 쇠약으로 확인되는 노년의 고약함- 혼자된 고통과 번민, 망상,,끝없는 자기확인과 부정 등- 의 정신적 손실이 늘어나면서 우울증에서 치매로 연결되는 것이기에 말이다, 그대는 모르리라, 옆에 가족이 있고 친구가 있어도 그와 같은 생각들을 혼자서 감당해야 하는 극도의 슬픔과 고통을!,,누구에게나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이다,

이러한 문제를 미리 예방하고 스스로 해탈까지 도달하게 된다면 더 이상 비할 바가 있으랴! 이제 우울증은 스스로 효과적인 방법만 찾는다면 정신병이라는 의학상의 의미에서 벗어나는 동시에 지혜롭고 독창적인 사고를 만드는 차원으로 높아지는 것이다, 지금까지 우울증에 대한 잘못된 역사는 나와 이들로부터 서서히 밝혀질 것이다, 기사는 나의 경험과 통찰력의 혜안으로 대환영 받을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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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들은 이제야 알게 되리니 –

인문학과 정치, 문화, 예술, 종교를 발전시켰던 세계의 위인들이 자신에게 찾아올 수밖에 없었던 우울증을 어떻게 극복하고 위대하게 되었는지 말이다,

정신의학적, 심리학적, 종교적- 기타로도 설명하지 못하던 우울증에 대한 정보를 지식은 없지만 체득한 경험과 해탈한 지혜의 나로부터 문제를 풀어가는 열쇠를 쥐고 있다, 아직도 우울증에 대한 설명으로부터 세계의 어떤 의학적 기사나 정보조차 현실성도 대안도 없기에 말이다, 그것을 안다는 전문가조차- 스스로 말의 모순과 논리에 빠져 명확하게 설명하지 못한다, 절대 가치처럼 믿는 지식이 오히려 자신을 오류에 빠지게 만들기 때문이다, 정신적인 문제란 지혜와 통찰의 문제이지 지식과 논리의 문제가 아니다, 따라서 나의 글은 단순 명확하게 전체를 포함하는 동시에 핵심적인 요약으로 끝나기 까지 많이 기대 하여도 좋다,

아인쉬타인- 의 고백-
1954년 철학자 에릭굿- 카인드에게 보낸 편지에서 아인슈타인은 내게 신(God)이라는 단어는 인간의 약점을 드러내는 표현 또는 그 산물에 불과하다고 적었다. 아인슈타인은 성경에 대해서도 한편으로는 명예롭지만 상당히 유치하고 원시적인 전설들의 집대성- 이라며 아무리 치밀한 해석을 덧붙이더라도 그점은 변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뉴욕타임스는 편지에 대해 무덤에서 나온 아인슈타인이 과학과 종교 사이에 벌어지는 문화 전쟁에 기름을 뿌렸다고 평했다.

이렇듯 인간의 정신세계는 보다 앞서간 사람들에 의하여 심층적이고 과학적으로 발전하였으며 나와 같은 사람들에 의하여 한 차원 더 발전하게 될 전망이다, 그렇게 되려면 먼저 가장 기본적인 인문학에 창의적인 연구가 있어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모든 가치의 기본이며 압축적 예술인 시- 에 대한 가치를 바르게 이해하고 평가하는 연구가 선행되어야 한다, 마이크로소프트(MS) 창시자이자 세계 최고의 부자이며 기부왕- 빌게이츠는 지금까지 자신을 만든 것은 인문학이라고 정의하였다, 인문학이 창조의 발상지라는 것이다, 인문학의 압축적 정의는 무엇인가? 바로 시이다,,우리는 마음에 빛나는 시적 사고관을 만들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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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달음과 해탈을 다른 종류와 비교하여 보았지만 그것이 가장 구체적이고 효과적인 방법이다, 인간은 자연의 부분이다, 아무리 지식으로 정신을 꾸미고 포장해도 자연에 포함되는 것이다, 대자연의 이치에서 함축된 진리를 해탈의 지혜로 엮어낸 시-의 가치를 심층적으로 체득함으로서 자신의 본성에 완점함을 발견하고 통찰력과 직관을 얻어야 한다, 누구라도 깨달음과 해탈의 끝에 도달해야 하는 것이다,,,

이 시대에 가장 뛰어난 소설가이자 시인인 이외수씨의 어떤 책에 유난히 강조한 한 문장이 생각난다, “오직 시- 속에서 살라!” 나는 처음에 그것이 무슨 말인지 몰랐다, 내가 우연하게 그러한 과정을 겪고 깨달음과 해탈에 도달한 후에야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알았다,, 시- 가 지니는 압축적인 가치로 감성을 자각하고 본능적인 의지에 다가서야 하기 때문이다, 시- 는 정신의 핵심적 가치이다,,그대들이여! 좋은 사람을 가까이 하라- 실로 좋은 사람은 좋은 영향을 끼치기 마련이다, 그대가 절망에서 일어나지 못할 때 그들의 말 한마디는 기꺼이 나침판이 되어 준다…

세계의 시인들이 지녀야 하는 가장 기본적인 조건이 무엇인지 아는가? 자신을 시험하는 한계를 견디며 깨달음과 해탈에 도달하는 것이다, 내가 객관적으로 확인한 바로 그들에게 공통된 것이 그것이다,,왜 그렇게 되었는지 나중에 하나씩 예를 들어가며 그들의 내면과 의도를 보여주고 설명할 것이다, 그것은 나 같이 지식은 없어도 되지만 지식이 많다고 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세계적인 노벨 문학상을 받은 시인들이 일류 대학을 나왔거나 그렇게 많은 지식이 없었다는 이력을 유념하라!, IQ 와 EQ는 머리에서 별개의 능력을 나타내기 때문이다,,아이큐가 높다는 것은 기능적 지식을 유도하지만 감성지수가 높다는 것은 인간적인 지혜를 유도하는 것이다, 순수와 정직으로 이루어진 감성의 벽을 통과하지 않으면- 깨달음과 해탈의 문은 열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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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한국은 정신의학 심리학 예술 종교 등- 기타 모든 인문학에 질적인 가치와 독창성이 세계의 그것보다 훨씬 뒤떨어져 있다.,왜냐하면 보다 객관적이며 합리적으로 발전된 선진국에서 창조된 가치들을 들여와 모방에만 급급하였기 때문이다, 이러한 문제의 근원은 스스로의 성찰과 노력이 부족한 탓도 있지만 무엇보다 사고를 발전시키는 방법을 모르기 때문이다, 언제까지 자신이 주체가 되지 못하고 변방의 북소리만 내게 될 것인지 실로 난감하다, 선진국의 가치들을 우리 정서에 맞도록 빠르게 체화시키면 좋겠지만 지도층에 있는 자들이 핵심을 모르기 때문에 그것조차 헛돌게 된다,

한국적 경향은 일찌기 유교 문화의 경직된 유산이기도 하지만 그로부터 기회주의적 문화를 낳았기 때문이다, 나에게 이득이 된다면 남은 피해가 되어도 개의치 않는 획일적이고 종속적인 문화가 낳은 결과물이다, 성실한 노력의 과정보다 결과적 눈치만 남았던 것이다, 애초에 자기 중심적 기득권으로부터 인간을 공평하며 동등하게 생각하는 인식조차 없었던 것이다, 마음을 여는 가장 중요한 요소가 그것으로부터 출발하는데도 말이다, 따라서 한국의 정신문화가 그 어떤 종류보다 나은 가치를 제시하지 못한 것은 당연하다, 그렇게 왜곡된 정신적 바탕이 씨를 뿌리고 후대가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한국의 사회 각계에 나타나는 일반적인 현상이다, 이러한 정신문화적 경향은 인간적인 가치를 밑으로 퇴보시켜 버린다, 남의 정신문화를 모방하는 것은 그만큼 가치가 떨어지는 것과 같다, 개인적, 사회적, 국가적으로 엄청난 정신적 손실과 물질적 낭비를 가져 오는 것이다, 개인이든 국가이든 미래를 생각하면 어둡기 그지없다, 왜냐하면 미래는 창조가 발전의 가치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가치 창조는 지혜에서 나오는 것- 이러한 풍토에서 누구인들 자신을 성찰하며 그 길에 도달하겠는가? 마음의 준비가 안 되는 것이다, 그러나 누구라도 한번은 그 길을 가야 한다, 무엇보다 자신을 가장 초라하게 훼손하는 우울증과 치매가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보다 빠르고 현명한 방법을 찾아내어 스스로 예방해야 한다, 핀란드는 우울증의 나라이다, 주변 환경과 분위기가 그렇게 되기에 알맞다는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핀란드는 세계 국가 경쟁력 1위- 교육 경쟁력 부동의 1위- 행복지수 1위이다, 현명하고 지혜롭게 극복하는 인간적 가치의 과정들이 완성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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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의 교육은 남과의 다른 재능을 스스로 발견하게 하는 것이다, 인성 교육이 최종목표가 되면 그것은 기본적이고 당연하게 스스로 알게 된다, 자신의 자아를 발견하면서 재능을 극대화 시키는 것이다, 그것이 완성을 이루며 독창적인 인간을 만드는 교육이다, 핀란드 교육은 사회적 지식과 인간적인 감성을 일깨우는 핵심적 가치들이 고스란히 들어 있었다, 인성 교육이 최고의 인간을 만드는 예술이었다, 그들은 한국의 아이들처럼 학원을 다니느라 바쁘고 많은 시간을 공부로 낭비하지도 않는다, 현명하고 지혜롭게 깨달은 어른들이 교육적 핵심과 가치들을 합리적으로 선별하여 지식과 지혜가 부합되는 최적의 교육을 하였던 것이다, 그것은 어른이 되는- 시점에 조금만 동기가 부여되어도 자연스럽게 깨달음을 얻고 해탈에 도달한다, 그러한 환경과 저변들이 스스로를 최고의 경지에 도달하게 하고 서로에게 상승 작용을 일으키는 것이다,

우리는 아직도 교육이라는 예술을 모르고 전인간적 핵심과 가치를 모른다, 한국의 그것은 남을 모방하고 흉내를 내기에도 바쁘다,,

( 참고–)
우리는 흔히 자아라는 말을 사용하는데 사전을 찾아보니 ( 자아: <심리>자기 자신에 대한 의식이나 관념. 정신 분석학에서는 이드(id), 초자아와 함께 성격을 구성하는 한 요소로, 현실 원리에 따라 이드의 원초적 욕망과 초자아의 양심을 조정한다. 자아가,,기타 등등. ) 분별력이 없으면 쓸데없는 설명만 가득해 진다, 머리에 가득 들어찬 지식 때문에 이렇게 많은 단어를 사전에 넣은 것이다, 어떤 단어의 뜻도 바르게 알지 못하는 이들에게 “그대의 자아가 무엇인가? 라고 물어보면 이것을 암기했다가 앵무새처럼 말하지 않겠는가? 혹시 빠진 것이 없는지 불안해 하면서 말이다, 본래 언어가 가지는 모순 때문에 명확하고 객관적인 답이 어렵지만 지나치게 많이 펼쳐 놓았다, 우리의 사고는 생각과 마음으로 나누어진다,,( 자아: 생각을 담는 바탕 즉- 마음 ) 이라고 하면 간단 명확한다, 자신들의 그것을 스스로 확인한 적도 없으니 비슷하게 느끼는 것들은 모두 사전에 담아 놓은 것이다, 자아나 초자아라는 것은 마음이다, 모두 같은 말이다, 참고로 초자아라는 것은 초현실주의자- 시인이 되어야 그 말을 알게 된다, 혼동하지 말자, 우리는 아직 그것을 모른다,

( 16 )
아인쉬타인은 자신의 정신적 가치가 불교를 닮았다고 말하였다, 스스로 깨달음과 해탈의 지혜를 체득한 후에 말하였기 때문에 애초부터 불교의 그것과는 상관은 없다, 순수하게 자신의 노력으로부터 그것을 얻었기 때문이다, 그가 말한 의도는 자신의 사고와 불교에서 말하는 인과응보의 가치를 비교하여 보니 명확하게 닮았던 것이다, 우리의 인식은 아인쉬타인의 과학처럼 상대적으로 절대적으로 공평하고 등등하다, 자신만 그것을 모르고 있을 뿐이다, 알고 보면 과학이 계산하는 최소한의 수처럼 철저하게 스스로 인식을 만든다. 위대한 과학자는 스스로 깨달음과 해탈에 도달하여 있었다,

깨달음과 해탈의 지혜는 노력하는 만큼 터득하는 것이다, 스스로 노력하여 스트레스와 우울증, 치매와 같은 문제를 예방하고 무한하고 창조적인 정신세계를 만들어야 한다, 무엇보다 가장 지혜롭고 현명한 방법은 시간을 단축하는 것이다, 내가 깨달음에서 해탈의 끝에 도달했던 기간은 1년- 그것을 검증하고 확인하였던 과정이 1년-, 도합 2년 걸렸다, 과정이 빠르다고 다 효율적이라는 것은 아니다, 보다 빠른 현대의 변화에 적응하면서 시- 라는 핵심적인 도구로 지혜를 체득하는 것보다 나은 것은 없다는 뜻이다, 따라서 누구라도 나보다 나은 방법으로 그 곳에 도달하는 구체적인 방법과 설득력을 보여 준다면, 이글을 쓰는 것을 중단하겠다, 그러지 못하면 그동안 인문학과 정신의학 심리학 예술, 종교 등- 기타 정신세계의 지식을 다루었던 한국의 퇴락한 집단에 보다 가혹한 분석과 비판이 있게 될- 것이다,

( 17 )

오바마 부상 뒤엔 문학적 재능 있었다”
NYT, 대학 문집에 실린 시 2편 소개-

그의 시- 에는

나와 무엇을 하려는가, 애야/ 편안한 삶을 살아/세상의 표피와 거짓을 구별하지 못하면서’ 라는 부분이 나온다. 기타 — 그가 쓴 책은 300만 이상 팔린 베스트셀러가 되었다고?,,,

( 해설 )
인터넷 정보로 인용한 시라 짧다, 여기에서 나- 라는 것은 자신의 사고를 바라보고 쓴 것이다, 언제나 편안한 삶을 살면 불편한 것을 모른다, 불편한 것을 모르기 때문에 편안한 것조차 모른다는 뜻이다, 편하다는 것을 찾지만 이윽고 면역이 되기 때문이다, 말이라는 지식이 낳은 모순이 인식에 작용하기 때문이다, 오바마는 그것을 간파한 것이다, 지식의 그것은 사실과 거짓을 구별하지 못하게 유도한다, 언제나 거짓은 거짓을 추구하게 마련이기 때문에 행여 자신은 그러한 타성에 안주하지 않으려고 쓴 시- 이다,

오프라 윈프리-
오프라 윈프리는 미국 미시시피의 작은 시골마을에서 사생아로 태어났다. 그녀는 어린 시절을 엄한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슬하에서 자랐다. 가난함이 싫어 파출부 일을 하는 엄마와 함께 살기 위해 밀워키로 이사했지만 가난함을 벗어날 수는 없었다. 9살 때 삼촌에게 처음 성폭행을 당한 뒤로 몇 명의 친척들과 주변인들에게 성폭행을 당했으며, 14살의 나이에 아이를 낳기까지 했다. 그녀는 아이가 몇 개월 만에 죽는 아픔을 겪어야만 했다. 게다가 그녀는 마약을 한 경험이 있고 비만을 경험하기도 했다, 그러나 현재 오프라 윈프리는 모든 것을 뛰어 넘어 정신적인 면으로는 어느 대학 총장이나 정치가, 종교적 지도자보다도 더 큰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음에 틀림없다, 그녀가 추천하는 책은 단숨에 베스트셀러에 오르기도 한다,,

( 해설 )
위의 내용도 인터냇 정보라 짧다,, 오프라의 성공은 그냥 얻어진 것이 아니다, 그는 성인이 되기도 전에 온갖 좌절과 고난을 겪었다, 하지만 그는 인내와 극복을 통하여 자신의 한계를 넘어섰다, 그리하여 다방면으로 위대한 재능을 발휘 할 수 있었다, 그가 좋은 내용과 위대한 가치가 담긴 책을 선별하여 사람들이 책을 읽는데 추천하는 이유도 지혜에서 얻은 통찰력과 직관의 분별력 때문이다,,

( 18 )
요즈음 들어 스트레스에 지치고 심약하기 쉬운 현대인을 맹목적인 종교에 의지하게 하거나 요가나 명상, 기체조, 등- 기타로 유혹하는 것을 본다, 중심을 잃어버리기 쉬울 때는- 마치 군중과 무리에 이끌려야 하듯 그것을 만병통치약처럼 선전하고 있는 것이다, 오직 그것만이 스트레스와 긴장을 풀어주고 깨달음과 해탈에 이르는 유일한 처방처럼 말이다, 그것은 환경과 분위기에서 오는 일시적인 만족으로 나타나는 착시현상에 다름이 아니다, 답답하다고 느끼는 일상의 자리를 벗어나면 상쾌해야 하고 돌아오면 스트레스가 쌓여야 하는 것이다, 원인과 결과는 같은 종류의 것이기에 근본적인 문제는 사라지지 않는다, 때문에 눈과 귀만 어지럽고 소란스러울 뿐- 진정한 도움을 주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유일하다는 종교를 붙잡고 매달려 보아도 기적은 나타나지 않는다, 그 토양에서 나오는 말이란 비현실적이며 제한적이기 때문이다, 꿈은 영원한 꿈이어야 하고 자신은 깨어나야 하는 것이다, 누구나 목표를 가지고 있다, 목표가 이루어지는 것은 현실이다, 그것은 꿈이 아니다, 누구나 성취 할수 있는 목표는 노력하는 만큼 이루어지는 것이므로 공평하고 구체적이고 과학적이다, 그것은 기적과 같은 공짜를 원하지 않는다, 공짜는 결코 자신의 것이 안된다, 가고자 하는 목표-신뢰하는 의지만 있으면 되는 그곳- 그곳이 어딘가? 바로 해탈의 경지이다,,

( 19 )
나그네와 그의 그림자- ( 니체 ),

돌아가지도 않겠는가, 올라가지도 않겠는가.
영양이 다니는 길도 없는가,
그렇게 나는 여기에 기다리고 있다,,
눈으로 보고 손에 잡히는 것일랑 꽉 붙들고
다섯 자 넓이와 이침 노을,
그리고 발아래 세계와 인간과 그리고 죽음!

( 해설 )
세계 인문학의 3대 거봉인 니체가 우울증을 겪으며 죽음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단 한 발짝도 움직일 수가 없을 정도로 마음의 굴레에 묶여 있는 자신을 표현한 시- 이다, 니체는 어려서부터 총명하여 천재라는 소문이 나고 지식이 출중하였다고 한다, 그는 독일에서 20대 후반에 대학 교수를 지냈다, 그러나 지식이 아무리 많아도 지혜의 나를 알지 못하면 우울증이 찾아오는 것이다, 자신도 모르게 찾아오고 그렇게 고통스럽게 되는 것이기에 이러한 현상이 생기는 것이다,

R 바그너 – ( 니체 )

사슬에 고통 받는 그대,
평화도 자유도 빼앗긴 정신이여,
언제나 의연하면서 그래도 구속받는 정신이여,
점차 미움을 받아 발가벗겨진 정신이여,
마침내 그대는 향유가 든 독배를 들었다,
아, 그대도 십자가 곁에 쓰러졌다,
그대도 아 그대도–정복을 당하였는가!

오랫동안 나는 이 굿을 보고 섰다,,
전옥과 내음, 비통과 원한과 죽음의 내음 사이로,
그 사이로 안개처럼 피어오르는 향연과 교회의 내음
그것은 서먹서먹하고 몸서리 처진다,

춤추며 나는 어릿광대의 모자를 하늘에 던진다,
나는 빠져 나왔으니까!

( 해설 )
R 바그너라는 사람이 우울증으로 고통스러워하다
결국 종교를 찾게 되었다는 것을 보고,
자신이 겪었던 그러한 과정을 생각하며 R 바그너를 향하여 쓴 시-이다,,
니체가 빠져 나왔다는 것은 그것을 겪는 과정에–
그냥 시간이 가기를 기다리고 참고 인내하여 빠져 나오게 되었다는 것이 아니라-
우울증의 비밀을 지혜롭게 풀어가며 빠져 나왔다, 그는 마음에서 자유를 찾아 해방된 것이다, 스스로 깨달음과 해탈의 끝에 도달한 것이다, 영원한 자유를 증득한 것이다,

나는 오직- ( 니체 )
말을 만드는 사람
말이 전부다,
내가 전부다,

( 해설 )
이미 그는 말이라는 언어가 가지는 생각의 모순들을 우울증을 통하여 겪었다, 말이란 지식이 자신을 한 발짝도 움직이지 못하게 할 때- 까지 고통으로 겪은 것이다, 그는 말이라는 지식이 자신을 훼손하고 휘둘리게 하였던 사실을 발견하고 그것의 허물을 벗어 던지면서 해탈의 끝에 도달하였다, 말의 사슬을 끓고 완전하게 해방 되었다, 드디어 나- 를 완전하게 안 것이다, 그리하여 자유롭고 균형 잡힌 말을 사용하게 되었다, 그는 말을 다루고 생각을 다루고 정신을 다루게 되었다, 그의 정신은 지혜가 된 것이다,

가장 고운 육신은—– 베일일 뿐 – ( 니체 )
그 속에 수줍어하며….보다 아름다운 것이 감추어져있다,,

( 해설 )
보다 아름답고 중요한 것은 자신의 마음에 들어 있다, 니체의 이 말은 마음이 중요하다는 우리들의 일반적인 표현이 아니다, 지식이라는 말의 이미지를 자각하고 깨달음과 해탈에 도달하여 확인한 지혜의 나- 를 말하는 것이다, 그것은 누구에게나 똑 같이 숨겨져 있다, 우리는 그것을 찾아야 한다, 행여 자신의 밖에서 환경과 분위기를 찾아가고 죽을때까지도 확인하지 못하는 종교를 찾아가고 군중과 대세라는 무리에 휩쓸리지 말라- 왜냐하면 최고의 그것은 언제나 자신의 마음속에 있는 것이므로ㅡ,,,,

스스로 노력하여 자신에 고유한 그것을 찾아야 한다– 나는 방법과 방향이라는 도구만 그대의 손에 쥐어 줄 뿐- 그것은 반드시 혼자 가는 길이다,,,

,

( 20 )
말과 행동이 같지 않은 종교. 신도로부터 헌금을 거두어 본인이나 가족, 친인척들의 이름을 그곳에 밀어 놓은 종교지도자란 말장사를 하는 교주이며 일종의 사기꾼이다, 생각해 보라- 그처럼 진부하고 편리한 말이 어디에 있는 가- 그러한 종교 지도자는 선진국 어디를 찾아보아도 없다, 하기 쉬운 말로 자신의 허위와 기만을 증명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언제나 행동이 없는 말은 거짓이기 쉬운 법이다, 원인과 결과는 같다는 인과응보는 매우 철학적이고 과학적이며 사실적이다, 아인쉬타인의 상대성 이론이 20세기 과학의 발전을 증명하였듯 마음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종교지도자라면 진실로 아래로 내려와 가난한 자와 함께 하고 조건 없이 베풀어야 한다, 유일하고 성스러운 행위만이 종교적 가치를 나타내는 것이다, 세계에서 유독 한국의 종교가 썩어가는 현상은 그들이 신- 보다 집단과 돈을 숭배하기 때문이며 무엇보다 자신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선진국의 핵심적인 가치들은 맹목적이고 순종적이어야 하는 종교보다 객관적이고 합리적이며 구체적 사실로 증명되는 시- 문학적 가치를 추구한다, 종교보다 시- 와 철학이 그들의 사고를 발전시킨 것이다, 각각의 분야에서 스스로 노력하여 깨달음을 자각하고, 완전한 나- 를 확인하며 최고의 경지에 다가 섰던 것이다, 그것은 일찌기 동양보다 발전된 서양에서 보다 깊게 연구가 되었으며 모든 면에서 획기적인 발전이 되도록 유도하였다, 깨달음의 통찰력과 해탈의 지혜를 선사하는 시- 와 철학이 정신문화에 기본이 되어 인문학을 비롯한 예술과 정신과학 등등의- 기타로 나아가며 발전의 밑거름이 되었다, 시문학적 사고가 가장 중요한 핵심이 되었고 발전의 가치로 활용된 것이다,

( 21 )
나는 진작에- 우울증을 통하여 깨달음을 얻고 해탈에 끝에 도달하였다고 말하였다, 왜 그렇게 되었는지 그것은 30대 후반의 기억 속에 그대로 남아 있다, 그것은 나중에 핵심적으로 설명하기로 하고 먼저 우울증에 대한 자료를 뒤져 보았더니 많이 나왔다, 세계적으로 위대한 인물들이 어떻게 그렇게 되었는지 먼저 예를 들어 설명하는 것이 좋겠다, 그들의 의도와 내면의 가치를 보여주는 것이 더욱 신뢰를 줄 것이다,

*
오쇼라즈니쉬
단순히 듣기만 하는 것은 얼마든지 할 수 있다, 그대의 귀가 이상이 없는 한- 그대는 완벽하게 들을 수 있다, 그러나 단순히 듣는 것은 귀 담아 듣는 것과 다르다, 귀담아 듣는 것은 마음이 평온하고 잔잔하며 마음속에 아무런 파문도 없다는 것을 뜻한다, 그러지 못할 때 그대는 타인의 말을 계속 자기 나름대로 해석하고 계속 그렇게 할 것이다,

( 해설 )
말은 지식이므로 그것을 비교하고 이해하고 암기하며 완벽하게 들을 수가 있다, 그것은 약속이며 기호이다, 반면에 정서적으로 만족하지 못하고 끝없는 논쟁이 되게 하므로 완벽한 것이 아니게 한다, 지혜는 대자연의 산물이다, 지혜를 듣는 것은 파도가 없는 호수에 물방울처럼 스며드는 것이므로 생각을 필요로 하는 것이 아니다,,시간이 가면서 자연스럽게 보게 되고 앎으로 확인 된다, 마음을 열어 놓고 순수하게 받아 들이기만 하면 된다, 내 말은 지혜로부터 나온다, 이해하거나 비교하고 암기하지 말고 그대로 신뢰하라! 순수하게 받아들인 그것만이 자신에게 도움이 된다,,

*
오쇼라즈니쉬
재주는 배우지 않으면 안 된다, 재주 있는 사람은 모방한다, 그는 천재를 모방한다, 천재는 모방적이 아니라 동착적인 것이다, 좋은 말은 훌륭한 말처럼 보이기 위해 훈련된 말이다, 그런 말은 훌륭한 말의 영혼을 갖고 있지 않으며 그 특성만을 갖는다,

( 해설 )
지식은 지식만을 모방한다, 그것은 독창적인 것이 아니라 흉내를 내는 것이다, 그것은 마음의 균형과 자유를 주지 않는다. 인간은 자신을 보호하고 완전하며 행복해야 한다, 자연의 이치와 인간의 가치를 최고의 상태로 깨우쳐야 한다, 그러한 사람이 천재이다, 지식은 밖으로 드러날 때 잘 포장되어 좋은 상품 같지만 결코 창의적이지 못하고 훌륭하지도 않다, 훈련된 지식의 말은 기능적인 특성 때문에 인간성과는 별개로 나타난다,

( 22 )
독창적인 지혜- 그것은 천재만이 활용하는 유일한 방법이다, 스스로 바른 길을 찾아 가는 간단하고 명확한 사고이다, 나는 초등학교 전체에서 성적이 꼴찌였다, 나이를 먹고 중학교 시험을 컷닝으로 통과한 것이 지식의 전부이다, 20대에도 그것은 도저히 이해가 안되었던 것이다, 그렇게도 쪽이 팔렸던 내가 이제와서 어찌 뻔뻔하게 천재라고 우기겠는가! 나는 30대 후반에 우연하게 시- 를 통하여 깨달음과 해탈에 도달하였을 뿐이다, 그리고- 나는 그렇게 되는 유일한 방법을 알고 있다,

우리는 각자 유일하고 독창적이며 훌륭한 영혼을 가져야 한다, 그대의 지식은 새로운 지혜를 더해야 한다, 스스로 완전한 자아를 발견하고 위대한 천재가 되어야 한다, 그러기에 나는 이 글을 쓰고 있는 것이다, 이글이 완전하게 끝날지는 모르겠으나- 자신만의 청정하고 명료한 그것을 알기 전까지는 결코 삶에 굴하거나 좌절하지 말기 바란다, 왜냐하면 슬픔에 이어 기쁨이 오는 생각의 법칙을 알아야 하고, 마음으로부터 깨달음과 해탈의 진리를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거기에 자신도 몰랐었던 사고의 빛이 있고- 광명의 삶이 있다, 그것은 누구나 시도하면 찾아가게 되어 있다.

( 23 ) 오쇼라즈니쉬
그대가 지금까지 알고 있는 것은 설교자들은 사실은 병자이며 환자일 뿐이다, 그들은 삶의 맛을 음미하지 못하고 있다, 나는 그대에게 삶의 맛을 가르치고 있다, 나는 그대에게 인생을 거부하라고 가르치지 않았다, 왜냐하면 나에게 있어서 삶은 바로 신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 해설 )
지식은 자신을 완전하게 하지 못한다, 그것을 절대의 가치처럼 가르치는 설교자들은 병자이며 환자일 뿐이다, 자신조차 모르는 그들을 맹신할수록 그대를 더욱 깊이 병들게 만들기 때문이다, 지식은 사고에서 면역성을 길러주고 타성을 지니게 만든다, 그것은 기계적인 기능일 뿐- 결코 인간의 맛을 주지 않는다, 깨달음과 해탈의 지혜를 체득하라- 비로소 건강하고 독창적인 삶이 확인 될 것이다, 그것은 신의 영역과 같은 최고 경지의 삶이기 때문이다,

* 오쇼라즈니쉬
당신이 성경책이나 불경[佛經] 책을 샀다고 해서 그것에 있는 것이 당신의 것인가? 알지 못한다는 사실을 인정한다는 것이 인간이 할 수 있는 일 가운데 가장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사실은 가장 인간다운 일이다,

( 해설 )
성경이든 불경이든 그것은 그 자체로 완전하다, 아무리 그것을 맹신하고 따라가도 지식으로 만들어진 책이다, 그러한 말은 신의 영역이다, 그것을 인정하라- 그것은 자신의 삶으로 이해되지 않아야 당연하다, 무엇보다 자신은 예수처럼 병사에게 끌려가 십자가에 희생 당하거나, 왕자의 자리를 버리고 부처처럼 살지 않을 것이기에 말이다, 현명하게 헤아려 보라- 그대는 처음부터 이루지 못할 꿈을 쫒고 있다, 그러한 사실을 인정하는 것은 어렵다, 그러나 가장 인간다운 일이다, 그대가 자신을 알 때에 삶을 보다 완전하고 행복하게 만든다, 왜냐하면 자신의 불완전함을 인정하면서 깨달음의 문이 열리기 때문이다,

참고-
오쇼라즈니쉬- 배꼽의 저자로 한국에서 널리 알려진 베스트셀러에 오른 인도의 3대 성인으로 불리는 정신적 구도자,

( 24 )
옛날이나 지금이나 종교 지도자들이 가장 추악하고 악랄한 문제들을 인간에게 제공하고 있다, 그것은 언제나 종교라는 이름으로 핑계를 대고 성스럽게 포장되었다. 이러한 경향은 우연히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필연적이다, 세계 도처에서 일어나는 종교 전쟁을 보라- 그처럼 흉악하고 잔인한 전쟁이 있는가?, 지금까지 종교란 이름을 가진 전쟁으로 수천만명은 족히 희생시켰다, 종교가 인간에게 엄청난 파괴와 재앙을 만든 것이다, 완전한 신이 있고 종교가 있다면 그렇게 끔찍한 짓을 하도록 시켰을까? 그들의 머리에 들어있는 종교라는 지식이 문제를 일으키며 인간을 죽인 것이다, 종교와 책이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책 속에 있는 말이라는 지식이 그렇게 만든 것이다, 자신을 모르는 그들은 결코 신과 인간의 지혜를 모른다,

그러한 문제는 그들이 믿는 신이 머리에서 사라지고 없을 때 흔히 일어난다, 언제나 종교와 신이 문제가 아니고 인간이 문제이다, 종교지도자가 자신을 절대 가치로 착각하면서 전쟁을 일으키고 맹목적으로 따르게 만든다, 내 편이 아니면 적으로 갈라서게 하고 선과 악으로 대변해야 직성이 풀리기 때문이다. 종교지도자를 믿는 신도들에게 맹신과 복종의 피만 부르게 만든 것이다, 무엇보다 종교지도자가 자기 기만에 빠지는지 주의하고 그것을 포장하는 것에 주의하라, 그리고 기억하라! 보다 인간적인 것- 만큼 신의 영역이 존재하는 것이다,

( 25 )
지식만을 주입하고 가르치려고 한다면-

그들은 지식이라는 고기를 잡아 주려고 하지만 고기를 낚는 지혜의 방법은 가르쳐 주지 못한다, 그들이 배운 지식으로 외면을 설명하지만 내면을 아는 방법은 설명하지 못한다, 지식만을 머리에 채우게 되면 전인간적 완성도를 높이는 것을 방해한다, 그것은 시간이 가고 늙어 갈수록 정신적 한계에 이르러 자신을 해치고 인간의 가치를 추락하게 유도한다, 항아리 같은 고정관념이 자신을 안다고 인식하고 지식에 안주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인간의 가치와 무한한 자유- 창의성을 강제하는 똥이 되어도 자신은 그것을 모른다, 지식은 자신의 본성과 무관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인간성과 최고의 가치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 머리에 지식만 들어있는 자- 가 돈과 권력과 명성을 추구하면 주변이 사적으로 활용되고 사회에 악영향을 끼친다, 지혜가 없는 지식은 스스로 안정과 평화, 행복의 가치를 지속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자신도 불행하게 만들고 부메랑의 독이 된다, 누구도 그 곳에서 벗어 날 수가 없다, 부처와 소크라테스는 그것을 간파하고 먼저 “너 자신을 알라! 고 정의하였다, 누구나 노력하면 그곳에 도달하게 되며 빛나는 사고의 광명을 체득 할수가 있다, 그것은 누구나 고유의 가치로 존재하는 본성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말을 모르고 그들의 경지를 모른다, 깨달음과 해탈에 도달해야 그말을 알게 된다, 부처나 소크라테스의 말은 자신을 안다는 자들을 지적한 것이다, 그곳은 우리에게 같은 방향을 가리키지만 스스로 그곳으로 가고자 노력하지 못한 우리는 그곳을 알지 못한다, 세계적인 시인이나 철학자, 인문학자, 예술가. 심지어 아인쉬타인과 같은 과학자도 단지 그곳으로 가는 과정은 달랐을뿐- 같은 목표에 도달하였다,

( 26 )
어린이는 지식을 많이 습득해야 한다, 그러나 어른이 되어도 그것은 지혜와 섞이지 않는다, 어른이 되면 자신을 아는 지혜를 체득해야 한다, 지식은 일정한 사고의 틀로서 작용하기에 지혜와 창조성을 방해한다, 지식은 정해진 문제와 정해진 답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세상에 똑같은 문제로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은 언제나 새로운 변화로 다가온다, 지혜는 새로운 것에 반응하고 변화에 대응하는 것이다, 그것을 같은 것이라고 착각하게 하는 것은 자신이 아는 지식 때문이다,

인간은 지식과 지혜의 균형을 가져야 된다, 자신을 성찰하는 노력으로 깨달음과 해탈의 지혜를 더 해야 한다, 지혜를 체득하는 것은 지식과는 상관이 없다, 누구나 자신을 최고의 경지에 이르도록 할 수 있다, 그곳에 이르면 스스로 최상의 형태- 최고의 경지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그것은 자신의 삶에서 단 한번도 확인한 적도 없으며 느껴보지 못한 것이다,

마치 인생에 긴 잠에서 막 깨어난 것- 처럼 광명의 아침이 되어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무엇보다 신기하고 향기롭게 느껴지며 사고의 명료함에 놀라게 된다, 그것은 영원까지 이어지게 만든다,

문제를 모르고 있을 때는 어렵거나 두렵게 생각이 되어도 알았을 때 뒤를 돌아보면 그것이 선입견 때문이었다는 것을 기억해 보자-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자신의 마음을 열게 한다, 가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알게 되고 습관이 되고 면역이 된다, 조금씩 체득하면 어떠한 것도 어렵지 않은 것이다, 지식을 그렇게 배워 알고 있듯이 지혜도 그렇게 배운다, 그렇게 지혜를 체득하는 것이 가장 빠르다, 그것은 세상에서 가장 간단하며 쉽고 가까이 있다, 그것은 자신의 마음안에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오죽하면 불교에서 그것을 손가락으로도 가르치지 않던가? 지금까지 우리가 그것을 알지 못한 것은 스스로 어렵고 멀리 있다고 생각하고 무엇보다 방법을 몰랐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아직 그렇게 되는 방법은 설명하지 않았다,

( 27 )
자신의 위대한 가치를 발견하고 무한하고 독창적인 발전으로 나아가는 기회가 인생에 얼마나 있겠는가! 어쩌면 나같은 사람에 의하여 단 한번 정도 있을 뿐이다, 우리는 지식을 채우는 것도 바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삶이 끝날 때까지 시간이 없다, 우리가 지혜를 체득하지 못하고 각종 스트레스를 겪으며 우울증과 치매가 찾아오는 것은 이와 같은 이유 때문이다,,

우리는 자신에게 이상적으로 부합하는 현명한 지혜를 지녀야 한다, 깨달음을 마스터하여 진리의 반석 위에 올라서야 한다, 그러한 사람들이 많이 생기면 개인의 발전과 행복은 물론- 어느 나라보다 빠르게 선진국이 된다, 그것을 알게 되면 자신이 체득한 방법을 반드시 후손에게 알려 줄 것이다, 기술적인 가치로도 그 만큼 훌륭한 가치가 없기 때문이다, 인간이 표현하는 최고의 가치를 스스로 알게 된다, 지식의 가치를 스스로 극대화 시킨다, 청정하고 명료하며 완전한 해탈의 그것을 자식들이 알게 되면 언제이든 자신은 세상을 떠나도 좋다고 생각한다, 어떠한 근심과 걱정도 하지 않고 행복하게 떠나게 된다, 그들도 자신처럼 살아갈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에는 그러한 사람들이 많이 나와야 한다, 각계- 각층에서 종류와 가치에 그러한 영향을 주는 사람들이 말이다, 깨달은 지도자가 많을수록 발전의 미래를 만든다,,,

( 28 )
여러 길은 한길로 한길은 여러 길로 통하게 되는 ,,,

세계의 위대한 인문학자나 시인, 철학자, 예술가의 바탕은 깨달음과 해탈에서 기본적으로 같다, 동, 서양의 정신적 차이란 깊이와 테크닉에 차이가 있을 뿐- 최고의 가치로 발전하는 생각의 법칙은 어느 곳에나 공평하고 등등하게 존재한 것이다, 그들의 합리적 사고관은 보다 쉽게 그 길에 도달하게 하였으며 그렇게 준비되고 발전된 사고는 한길로-한길은 여러 길로- 통하게 만들었다, 모든 가치를 서로 통하게 하는 것은 시적 사고관이다, 그러한 길로 바로 들어가는 길은 시-이다, 시-라는 도구는 가장 빠르게 그길에 도달하게 만든다,

시-는 창조의 발상이자 원동력이며 발전의 모든 것이다, 혹자들은 시-의 완전한 실체를 모르고 시대에 뒤 떨어져 고전적이거나 고리타분하다고 말한다, 이것은 매우 위험천만한 지식이며 오해로부터 비롯된 것이다, 시- 는 깨달음과 해탈의 끝에 도달하게 만들며 지혜를 유도하게 만든다, 우리는 시에 대하여 매우 잘못 알고 있다, 때문에 객관적으로 인정된 세계 시-를 추천한다, 세계 시-는 그러한 사고가 해탈의 바탕으로 준비되어 있으며 그것은 보다 철학적이고 합리적인 균형 감각을 필요로 하였다,

그들은 시공간에서 자유롭게 사고하며 보편적 진리들을 시-로 유추하는 창조의 방향에 있었다, 그것이 위대하게 준비된 그들의 기본 바탕이다,

( 29 )
예술가, 정신분석학자와 심리학자, 위대한 인문학자, 등 세계의 위인들이라면 누구라도 그럴 수밖에 없는 사고를 지녔다, 깨달음과 해탈을 넘어 초월적 바탕에서 작품을 만들었던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아직 그들의 의도와 핵심적 가치를 모른다, 그들과 같은 길로 들어서야 그길의 의도와 가치가 보이기 때문이다, 오늘날 한국은 지식이 한계에 이르고 발전의 바퀴가 헛돌고 있다, 지식을 활용하는 가치가 한계에 이르러 스스로 불량하게 작용하기 때문이다, 머리에 지식만 들어차면 코-앞만 보는 똑똑한 시각이 발달하고 잔머리만 굴리게 된다,

말이라는 지식의 타성은 만족과 행복을 모른다, 부족한 부분을 탐욕으로 채우려고 하기 때문이다, 소위 일류대학을 나와 각계에서 지도층으로 행세하는 자들을 보라- ( 한국에서 똑똑하다는 집단인 정치인과 고위공무원, 법조인, 언론인의 면면을 보라! 그들의 머리에서 인간적인 가치가 어떻게 작용을 하던가? 어떤 죄의식도 없이 말장난을 일삼고 밑에 계층을 착취하지 않던가? 왜냐하면 자신을 자각하는 인식의 경험을 해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때문에 틈만 생기면 기회주의적 사고가 되어 버린다, 생각이나 말이란 지식은 탐욕을 숭배할 뿐 양심에 영향을 주지 않기 때문이다, 그들은 자신들이 무슨 짓을 하는지도 모른다, 자신을 보는 지혜의 눈이 없기 때문이다, 지식의 타성과 면역성의 이미지에 속는 것이다, 이들은 IMF가 오는데도 찍소리조차 하지 않았다, 나라가 망하는 데도 자신의 부만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덕분에 중산층의 허리는 동강났으며 지금도 양극화 현상은 커져만 간다, 지식만의 그것은 자신을 보호하며 밑에 계층에 기생하게 만들 뿐이다, 더구나 이들은 공적인 자리에서 가장 사적이 되고 기회주의적이 된다,

한국의 경제 규모 순위는 브라질 러시아 등 인구 및 자원대국에 밀려 최근 5년 동안 네 계단이나 떨어졌다, { 한국경제신문, 2009년 07월 06일 기타 기사참조 }

우리는 이들의 머리에서 왜? 그러한 현상이 생기는지 알아야 한다, 공적인 가치는 깨달음의 분별력과 지혜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핀란드와 같은 일류국가는 스스로 완성되어 가는 인간을 키운다, 공적인 사고가 개인의 발전과 창의는 물론 국민적 국가적 발전을 유도한다는 것을 안다, 이들은 유치원 교육부터 그러하다, 지식을 절대 가치로 배우면 자신을 과신하고 독선적이 된다는 것을 안다, 똑똑한 지식만 머리에 채우게 되면 아부와 협잡질에 능하며 사기와 도둑질에 습관이 된다는 것을 현명하고 지혜로운 그들은 아는 것이다,,

그러한 경향은 개인의 정신문화는 물론 과학문명에도 그대로 적용이 된다, 간단한 예를 들어 보자, 세계적으로 진정 필요한 한국의 핵심 원천 기술을 보라, 오히려 세계의 독창적인 기술을 들여와 잔재주만 섞어 수출하고 있지 않은가? 수출이 전부인 나라에서 그것은 시간이 갈수록 부메랑이 되고 다른 나라에게 자리를 비켜 주어야 한다, 대일 무역수지에서 지금까지 일본에 넘겨주었던 경제 가치가 누적액으로 1000조원이 넘는다,, 나-를 모르기에- 핵심을 모르는 것- 독창적이지 못한 것-은 남의 흉내를 내야하는 것이며 스스로 한계를 가진다, 머리에 지식만 채운 똑똑한 그것은 한계를 가지며 밑에 계층에 희생양을 만들 뿐이다, 지식은 아무리 체득해도 자신을 지혜롭게 하지 못한다, 스스로 불안전하고 행복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자신에게 휘둘리며 남을 흉내 내기에도 바쁘다, 인간적인 성숙이 미래를 결정한다. 자신도 모르게 찾아오는 우울증과 치매를 걱정해서라도 해탈의 지혜를 체득해야 하는 것이다,

( 30 )
인간은 자신의 완전한 자아를 찾아야 사고가 명확해 지고 분별력을 얻게 된다, 그때에야 비로소 가치가 있는 것을 분별하고 창조적인 것을 시도할 수가 있다, 인간의 발전적 가치를 다루는 분야에서 그것은 기본이다, 자아라는 그것의 핵심과 본질은 책이나 말 또는 지식으로 알 수가 없다, 오히려 그것들 때문에 가려지고 숨겨진 지혜를 찾아 내어야 한다, 자신은 물론 상대와의 관계에서 필요한 말 한마디가 심층의 어디에서 나오는지 알아야 한다, 나 자신을 바로 알자- 자신을 아는 만큼 인간을 알게 된다, 따라서 나는 그대에게 심층적인 구조를 알수 있는 시- 의 지혜를 체득하게 하고, 그러한 습관을 통하여 깨달음과 해탈의 경지까지 인도하려고 한다, 행여 그대가 세계 시- 에 대하여 잘 모르는 선입견이 있다면 이제부터라도 모두 버리기 바란다, 시-가 어떤 것인지 자각하기 시작하면 스스로 그것의 핵심과 가치를 알고 찾아가게 된다,

내가 이름있는 시인이나 인문학자- 또는 종교지도자가 아니어도, 그대가 가장 믿고 신뢰하는 것처럼 신뢰하라! 내가 하는 말에서 그것처럼 중요한 것이 없다, 지난날 중국을 개방으로 이끌어 눈부시게 성장하게 만든 등소평의 말처럼, 흑고양이든 백고양이든 쥐만 잘 잡으면 된다는 뜻이다, 이러한 문제는 안내하고 유도하는 자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누가 가장 현명하게 그 길로 인도할 것인가? 그것이 문제이다, 이 길에는 종교도 일단 접어야 한다, 그것은 고히 접어 선반위에 두라- 이길에서 종교는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고 사고의 길을 막는 장애가 될 뿐이다. 자신을 알고 종교를 선택해도 늦지가 않다, 자신도 모른 채 각종 스트레스를 만들고 우울증과 치매가 될 때 까지-씨도 때도 없이 종교를 찾는다면 누가 좋아 하겠는가? 신이나 인간이나 그것은 도리가 아니다,

모든 것은 나로부터 나오는 것이며 어떠한 것이든 나의 것이 되어야 한다, 누구 때문이거나- 종교나 신을 위한 핑계는 없다, 자신의 지혜를 스스로 체득해야 독창적인 나- 를 알게 된다, 깨달음과 해탈의 진리가 종교의 영역이냐? 하면 그러하지 않다, 그것의 본질은 철학이다, 철학은 종교를 비교의 하나처럼 인정하지만 종교는 철학은 인정하지 않는다, 인간은 철학을 통하여 스스로 깨닫고 발전하기 때문이다, 철학은 과학을 인정하지만 종교는 과학조차 인정하지 않는다, 각각이 주장하는 최고의 가치에서 통하지 않는다, 자신을 찾기에는 철학이 알맞지만 오늘날의 철학은 말이 너무 많다, 논리와 논쟁을 거듭하는 말과 지식의 모순 때문에 자신의 가면을 벗겨내지 못한다, 때문에 부처와 소크라테스가 말한 너 자신을 알라! 는 간단명료한 진리를 수천년이 지난 아직도 우리는 그것을 모른다, 머리가 하얗게 되어 죽을때가 가까워도 그것을 모르는 것이다, 그것을 간파하여보니 보다 빠른 현대의 실용적인 면에서 간단 명확한 시-보다 효율적 가치가 떨어지기 때문이다, 그것을 찾아가는 과정에 그렇게 많은 말이 필요 없다, 스스로 자각하고 경험으로 체득해야 하기 때문이다, 다만 그 길을 가는 과정에 성찰하는 자세만 견지하라,,,

주의 ( 여기에서 말하는 철학은 서양철학을 참고한다, 동양철학이라고 기술되는 사주나 관상, 운명론이나 음양오행, 기타 등- 등 한국의 그것은 자신의 내면을 성찰하게 하는 철학의 기본 성질과 다르기 때문이다, )

( 31 )
괴로움을 안고- ( 헤세 )

산바람이 불때마다
울부짖으며
무너지는 눈사태는
신의 뜻일까?

아는 이 없이
이 세상을 내가
슬프게 방황해야 하는 것은 신의 뜻일까?

신은 정녕 알고 있을까?
미음의 궁박과 괴로움을 안고
헤매는 나를,

-아 신은 죽었다!
그래도 나는 살아야 하는가?

( 해설 )
인생에 어려운 문제가 부닥칠 때 더 이상 방법이 없다고 생각하면 사고의 길은 협소해지고 스스로 마비된다, 이러한 문제와 형태는 환경과 분위기에 상관없이 막다른 골목에 이르게 한다, 어떠한 위로나 조언의 말도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주변에 사람이 많아도 군중 속에 고독처럼 혼자가 되는 것이다, 그들이 자신보다 무엇을 더 잘 알겠는가? 생각이 있는 사람에게 그것은 오히려 독이 되고 만다, 사고의 길에서 해매는 끝에 극심한 고통이 생겨나고 신과 인간의 문제가 자신을 기다린다, 자신도 모르게 그곳까지 가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기억에 종교나 신을 모른다면 그것을 기억하지 않는다, 모든 것이 자신이 보고 아는 범위에서 나오기 마련이다, 나- 를 모른다는 것이 이처럼 불행을 유도하는 것이다, 인내의 한계를 극복해야 길이 열린다, 그러한 과정에서 깨달음의 지혜를 체득해야 마음은 자유를 찾고 행복에 도달하는 것이다,

( 32 )
안개 속에서 – ( 헤세 )

안개 속을 헤매면 이상하여라-
숲이며 돌은 저마다 외로움에 잠기고
나무도 서로를 보지 않는다,

나의 인생이 밟던 시절에
세상은 친구들로 가득하였건만
이제는 안개가 내리어
보이는 사람이 없다,,

어쩔 수 없이 조용히 모든 것에서
사람을 떼어 놓는 그 어둠을
조금도 모르고 사는 사람은
참으로 현명하다고 할 수가 없다,,

안개 속을 헤매면 이상하여라-
인생이란 고독한 것 사람들은
서로 모르고 산다,,,
모두가 혼자이다,,

( 해설 )
노벨문학상 시인인 헤세가 지혜를 체득하지 못한 사람을 안개속이라고 정의한 것이다, 말은 안개와 같이 추상체이며 이미지인 까닭에 속을 분간하기가 어렵다, 그것은 약속이나 기호로 이루어 진 것이지만 돌- 또는 나무나 숲처럼 사람은 제 각각이지만 동시에 변화되는 것이다, 지식은 한때를 밝게 할수 있지만 시간이 가면서 정신의 가치를 퇴색 시킨다, 우리는 시끄럽고 밝았던 한때로부터 조용하게 어둠을 유도하는 고독을 알아야 한다, 그곳에서 어둠으로부터 밝음을 유도하는 참으로의 현명함을 스스로 체득해야 한다, 해세는 그것을 알기 때문에 유유자적하며 우리에게 농담처럼 안개 속은 이상하여라? 하고- 진실의 노래를 전하는 것이다,

인생이 밟던 시절에 친구들이라 하여도 모든 것이 변하여 가기 때문에 이제는 그 속을 알 수 없다, 말이라는 지식으로 나를 알고 너를 알지만 지혜의 나- 는 나를 모르고 너를 모르기 때문이다, 더구나 젊음의 환희는 가벼운 자각조차 없으니 세월은 빨리 간다, 기쁨에 들떠 있는 만큼이나 시간이 빠르게 간다는 것을 아는 것은 현명하다-하리라, 늘- 깨어있는 나-를 알아야 말이라는 안개를 거두어 낼 수 있다, 그제야 모든 것이 명확해 지고 초연하게 보이게 된다, 비로소 나를 알고 인간을 알고 삶의 가치를 아는 시점이다,

우리는 삶에 대한 가치를 되물어야 한다, 어쩔 수 없이 오는 어려움과 어둠의 그것을 회피하거나 밖에서 희석시키려 하지 말라- ( 술과 친구 오락과 도박, 마약, 종교, 기타 등등 외부의 것에 의지하지 말고 스스로 내부의 변화를 살펴라- ) 모든 상황과 조건의 변화에서 혼자되는 선택과 결정이 되어 있지 않는 사람은 정녕 현명하다고 할 수 없다, 나- 를 모르는 사람의 특징이 그것이다, 삶의 어둠을 살펴 보고 알려고 노력하라- 모든 것으로부터 조용하게 혼자가 되는 깨달음을 자각해야 지혜의 눈이 뜨인다,

그러므로 지식이라는 말의 안개 속을 헤매지 말라- 인간은 본래 가치인 나- 를 알아야 하는 것- 그것만큼 중요한 것이 없다, 그것을 아는 길은 고독하며 인내가 필요하다, 혼자서 깨달음과 해탈에 도달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한 고독을 자유로 승화시키는 지혜를 체득해야 비로소 안개로부터 해방되는 것이다, 자신도 모르는 사람이 누구를 알겠는가? 서로를 모른다,

( 33 )
혼자- ( 헤세 )

지상에는
거리도 많고 길도 많지만-
이어 닿는 곳은
모두 같다,

둘이서 혹은 셋이서
말을 타고 갈수도 있고 차로 갈수도 있지만
마지막 한걸음은
혼자서 가야 한다,

그러기에 온갖 어려움을 겪는 일보다
더 나은 지혜나 능력은 없다,,

( 해설 )
깨달음과 해탈로 가는 길은 과정만 조금 다를 뿐 도착하면 결과는 같다. 지구상 어디를 논하지 않아도 시도하면 누구나 그곳으로 도달하게 되어 있다, 처음부터 지식의 수준과는 상관이 없이 같은 선상에 서는 것이다, 지혜를 찾는 길에 의견이 서로 다를 수도 있지만- 방향과 목표는 같다, 그러나 그 길을 가는 마지막 결정은 혼자서 해야 한다, 자신의 고유한 가치를 찾기 위하여 종교나 신에 의지한다면 어떠한 것도 알지 못한다, 혼자만의 길은 어려움을 동반하지만 스스로 인내하고 깨달음을 체득해야 해탈에 도달한다, 우리에게 많이 알려진 헤르만 헤세라는 시인이 깨달음과 해탈의 지혜를 체득하고 그 길로 가는 방법을 표현한 시-이다,

( 34 )
( 인터넷 정보 )

언제인가 그대는 갈매기 조나단의 자유로운 비행을 본적이 있으리라,,,,

주인공은 한 마리의 어린 갈매기 조나단이다, 이 갈매기는 매일같이 하늘을 오르락- 내리락, 선회비행을 하기도 하고, 위험한 곡예비행을 한다, 부모들은 먹이에 열중하는 갈매기의 삶에 있어서 그런 것들은 별 쓸모가 없다고 하며, 갈매기의 무리에서, 선원들이 주는 먹이를 먹고 잠자며 그렇게 생활을 하자고 한다. 하지만 조나단은 자신의 최고 가치 실현은 날으는 기술을 익혀서 가장 빠르고 아름답게 나는 것이라 믿고 죽을 고비를 넘기며 정말로 멋진 비행기술을 익힌다…

하지만 조나단을 이해하여 주는 갈매기는 조나단 가족이 속해있는 수만 마리의 갈매기 무리에서 한 마리도 없었다. 그저 먹이를 위해 날으는 것에 관심을 두는 무리에겐 조나단은 크나큰 불안을 주게 되어서, 결국엔 쫓겨나게 된다..그는 홀로 절벽에서 날으는 연습을 거듭해서, 이제는 세상의 어떤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비행기술을 익히게 된다..그는 살아 있었고 기쁨으로 들떠 있으며 공포를 컨트롤 할 수 있다는 사실에 대해 긍지를 느꼈다, 이런 성장과 성공을 거둔 조나단에게 천국에서 온 갈매기들이 조나단을 인도한다. 조나단과 함께 더 완벽한 날으는 기술을 연습하고 개발하는 곳으로 함께 가게 되었다. 최대 속도로 공중비행을 하는 단 한 마리의 갈매기! 그는 다른 두 마리의 갈매기를 만나 천국이란 곳으로 이동하였다.. 아니. 그곳은 천국은 아니지만..오래전부터 조나단이 바랐던 세상이었다. 많은 갈매기들이 하나 같이 모두 비행연습을 하는 곳. 그곳에서 조나단은 또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 어느 날 셸리반이 조나단에게 이렇게 말했다..”너는 백만 마리의 새 중 가장 뛰어난 한 마리야. 여기까지 오르는데 필요한 수많은 고통과 몇- 천년이라는 시간을 아낄 수 있었어.”‘천국이란 장소나 시간이 아니야.. 천국이란 완전의 상태를 가리키는 거야,,,’

조나단은 그곳에서 진정한 실력이 있는 노장 갈매기를 만나게 되는데, 노장 갈매기는 조나단에게 진정으로 빠른 것은 속도로 측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생각이 이동하는 대로 몸과 마음이 이동하는 경지에 다다라야 진정한 속도의 완전에 다다를 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스스로 그것을 조나단에게 보여 주었다. 조나단은 이런 경지에 이르기 까지 반복하는 연습을 하여 결국에는 완전하게 날으는 기술에 다다랐다. 기술이 완전해 지면서 조나단은 먹을 것과 삶과 죽음에 초연하게 되는데. 이런 경지에 있으면서도 조나단의 마음은 이전의 삶에만 급급해 하던 갈매기들을 생각하고 결국에는 천국에서 떠나려고 하였다. 이런 조나단에게 동료 갈매기는 낮은 곳에 머물러 있는 것으로만 만족하는 어리석은 갈매기와 같이 있으니 차라리 자신과 함께 더욱 완벽한 비행을 하자고 권유한다.

하지만 조나단은 자신과 같이 날기 위해 노력하지만 갈매기 사회에서 멸시를 받는 갈매기들을 안타깝게 생각하며 이를 거절하고 고집불통인 갈매기 집단에 가서, 자신과 같은 어려움을 겪는 갈매기들의 희망과 교사가 되어 도와준다, 그리고 그는 이 말을 남기고 사라진다. ( “너의 눈이 네게 이야기하고 있는 것을 믿지 말아 라. 네 눈이 보여 주고 있는 모든 것은 한계뿐이야. 너의 이해력으로 보고, 네가 이미 알고 있는 것에서 찾아내어라. 그러면 나는 법을 알게 될 거다’,,,)

“너의 눈이 네게 이야기하고 있는 것을 믿지 말아 라. 네 눈이 보여 주고 있는 모든 것은 한계뿐이야. 너의 이해력으로 보고, 이미 알고 있는 것으로 찾아내어라. 그러면 나는 법을 알게 될 거다’,,,

( 해설 )
지금까지 네 눈이 보고 이야기하고 경험한 모든 것은 네가 배운 지식이다, 너의 이해와 생각을 통하여 발현되는 모든 것까지 말이다, 왜냐하면 그 모든 것은 네가 알고 있는 지식으로부터 생성이 되기 때문이다, 그것을 사실이라고 믿지 말아 라-, 네가 그렇게 생각하고 알고 있는 한 그것은 한계를 가지게 될 뿐이다, 네가 지식으로 지혜를 안다고 하지만 그것은 지식으로 이해하는 것이다, 지혜는 네 마음속에 있지만 보물처럼 깊이 숨겨져 있다, 스스로 노력하여 깨달음과 해탈에 도달하기 전에는 그것을 모른다, 결코 알지 못하던 것이다, 네가 알고 있는 지식으로 이해에 노력하고 새로움의 그곳에 도달하여라- 스스로 해탈의 자유를 증득하라- 그러면 마음이 자유롭게 나는 법을 알게 된다,

어릴 때 나는 어린 갈매기 조나단이라는 재미있고 감동적인 동화책을 본 적이 있다, 어린 마음에 그것은 어린이를 위한 아름다운 동화나 만화처럼 꾸며진 글인 줄 알았다, 내가 깨달음과 해탈에 도달한 후-먼 기억에서 그것을 떠올리고 인터넷에서 조나단 갈매기라는 글을 찾아낸 후에 읽고서야 비로소 알았다, 그것은 깨달음과 해탈에 관한 시-였다, 아는 만큼 보였던 것이다,,

조나단이 깨달음을 자각하는 과정은 시-에 나와 있고 그가 시도한 모험으로 해탈의 도달한 결과는 시-에 설명한 그대로이다, 시-를 본 사람도 많겠지만 도대체 깨달음이란 무엇이고 해탈을 하면 어떻게 되는 것일까? 하는 가보지 못한 궁금증이 많다고 보기에 내가 아는 것과 조나단의 비행으로 모든 것을 신뢰하라고 해설로 덛붙인다, 갈매기 조나단의 비행은 우리들 사고의 비행을 뜻한다, 이 글을 쓴 작가는 스스로 깨달음과 해탈에 도달한 후에- 마음이 자유롭게 된 자신을 바라 보고 갈매기 조나단이라는 작품을 통하여 그대로 나타내었다, 그는 지식으로부터 벗어나 비로소 나- 를 아는 해탈의 지혜를 체득한 것이다, 스스로 최고의 경지에 이른 것이다, 마음으로부터 영원히 해방이 된 것이다,

( 35 )
너는 날렵하고 청순하여 – ( 게오르게 )

너는 날렵하고 청순하여 불꽃같고
너는 상냥하고 밝아서 아침 같고
너는 고고한 나무의 꽃가지 같고
너는 조용히 솟는 샘물 같다,

양지바른 들판으로 나를 따르고
저녁놀 진 안개에 나를 잠기게 하며
어둠속에 내 앞을 비추어주는
너는 차가운 바람, 나는 뜨거운 입김

너는 내 소원이고 내 추억이니
숨결마다 나는 너를 호흡하며
숨을 들이 쉴- 때 마다 너를 들이마시며
나는 네게 입맞춤 한다,

너는 고고한 나무의 꽃가지
너는 조용히 솟는 깨끗한 샘물
너는 날렵하고 청순한 불꽃
너는 상냥하고 맑은 아침,

( 해설 )
이 시- 는 자신이 바라 본 사고 ( 너- ) 와의 소통이다, 깨달음과 해탈에 도달한 시인은 우리들의 일반적인 생각처럼 상대적인 대상을 ( 너- ) 라고 표현하지 않는다, 시인은 마음의 눈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자신의 생각을 관조하며 보게 된다, 우리는 생각을 하지만 스스로 그것을 볼 수가 없다, 단지 말이라는 지식의 이미지로 느낄 뿐이다, 이러한 생각을 자각하는 노력만으로도 보다 나은 성찰을 하게 된다, 경계를 벗어나는 생각을 조절하는 습관을 들임으로서 효과적이 되는 것이다, 그러한 습관은 보다 빠르게 면역되고 깨달음에 유도하게 만든다. 이 시- 는 최고의 경지인 해탈에 도달한 시인이 자신의 사고인 ( 너- ) 를 상큼하게 바라보며 아침 인사처럼 말하고 있다, 그것은 언제나 자신에게 상냥하고 청정하다, 간단명료한 것이다,,,

누구에게나 고유하고 자유로우며 무한한 사고가 인식의 안에 준비되어 있다, 스스로 그것을 찾아야 자신을 위하여 바른 대응을 할 수가 있고 독창적인 가치를 창출하게 된다,,세계의 위대한 인물들을 종합하여 보면 그것은 기본적이다, 내가 왜 그대를 깨달음과 해탈에 이르기를 바라는가 하면, 자신을 최고의 상태로 유지시켜 주는 곳이 바로 그곳이기-때문이다,

세계의 위인들이 어떠한 행위를 하거나 시- 나 글을 쓸때 또는 예술 작품을 만들때 이러한 사고의 바탕에서 위대한 가치가 나오며 기본적인 질서와 형식은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누구라도 깨달음과 해탈의 사고를 완성하고 나면 무엇을 하던 그리 어렵게 느끼지 않으며 창의적이고 날렵하며 쉽다,

나를 모르면 끝임없이 사고에 혼란을 주고 구박하며 스트레스를 받는다, 언제인가는 자신도 모른 채 우울증과 치매까지 불러들이게 하면서 말이다, 그것은 자신뿐만이 아니라 남에게까지 피해를 입힌다, 그렇게 정신적 물질적 시간적 손실을 없게 하려면- 우리는 인생에 그리 늦지 않은 시점에 깨달음과 해탈의 길로 가야 한다, 조나단 처럼 깊은 계곡과 위험한 절벽에 수많은 도전하면서 고비를 넘어야 하는 곳이 아니다, 나는 그 길을 지나 왔기에 안전하게 가는 길을 알려 주려고 한다, 그러나 세상에는 공짜가 없는 것처럼 산등성이 하나쯤은 넘을 각오는 해야 한다,,그 길의 끝에 도달하면 마치 잠에서 깨어난 것처럼- 스스로 해탈의 균형을 가지고 자유로운 사고의 비행을 할 수 있게 된다,,그 비행은 무한하며 영원하다,

( 36 )
아! 그지없이 스트레스를 받으며 스스로를 조롱하는 가짜 인생들이여- 반드시 깨달음과 해탈을 하여 자신만이 가지는 신묘한 능력과 자질을 발견하라! 그러지 못한 자신도 그것이 무엇인지 모르기에 어쩔수 없겠지만 반드시 그것은 머리를 똥이 되게 만들고 인간 관계에 막대한 해를 입힌다, 나쁜 사람은 악취가 나고 좋은 사람은 좋은 향기가 나게 마련이다, 세계적인 비디오- 아티스트 백남준씨를 예로 들어 보자! 세계적인 아티스트이며 창조적 예술의 대가인 그에게” 예술이 무엇이냐? 고 기자가 물었다, 그가 불쑥 내 뱉은 말이 “예술은 사기야! 라고 말 하는 동영상을 본적이 있을 것이다, 그는 항상 진지하다, 농담이 아닌 것이다, 이후에 그 말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은 없었다, 그렇게 위대한 예술가가 그런 말을 했다면 왜? 그런지 질문을 하고 충분한 설명이라도 들어 보았어야 하지 않은가? 그는 이미 세상을 떠났다, 우리는 그 정도의 의도를 알아야 한다, 그의 모든 행위는 언제나 진지했으며 집중했다, 깨달음의 저편에 있으면서 진리의 눈으로 사물과 현상을 바라보고 자신이 만든 특성인 예술의 혼을 불러내어 작품을 만들었다,

그에게 예술적 행위란- 아니 세계적으로 유명한 인물들의 예술적 행위란 언제나 그리 어려운 것이 아닌 습관적이다, 마치 자신도 모르고 떠벌리는 삼류 예술가들이 하찮은 문학이나 예술 작품을 만들어 가는 어이없는 노력과 착각처럼 그렇게 어렵지가 않은 것이다, 위대한 그들은 언제나 조금의 집중을 필요로 하지만 그것은 즐거운 긴장에 다름 아니며 장난처럼 쉬운 것이다, 최고의 경지에 있으면 자신의 예술적 행위와 작품의 가치에 대하여 세계인의 눈이 모여 위대한 가치를 부여하고 최고의 예술로 받들어 지는 부담 때문일 뿐- 예술은 사기다! 라는 그의 말은 동시에 자신을 드러낸 순수와 정직함이다, 그의 말은 자신의 작품과는 상관없이 사실이었던 것이다, 그는 스스로 노력하여 만든 깨달음과 해탈의 그것을 인생의 꿈처럼 시간처럼 알았고, 그것으로 작품을 만드는 것을 집중하고 즐겼다, 그 이상의 모든 것- 돈, 명예, 작품- 그것은 모두 자신의 밖에서 평가되는 거리가 먼 사기였던 것이다, 한국의 인문학자여! 예술가여! 그대들이 깨달음의 경지를 넘어서 완전한 진리에 이르면ㅡ그것처럼 간단하고 명확하고 쉽다,

( 37 )
모래 알갱이가 있는 풍경- ( 쉽 보르스카 )

우리는 그것을 모래알갱이라 부르지만
그에게는 알갱이도 모래도 아니다,,
그는 이름이 없어 만족스럽다,,
보편적인, 특별한,
스쳐 지나가는, 오래 남는,
잘못된 것이든, 적당한 것이든,

우리가 보건 손대건 그에게는 아무 상관도 없다,,
만져지든 보여 지든 느끼지 않는다,,
창턱에 떨어졌다는 것은
우리의 일일뿐 그의 고난은 아니다,,
어디에 떨어지든 그에게는 똑같다,,
벌써 떨어졌는지 떨어지고 있는지
확신하지 못한 채,

창으론 아름다운 호수의 풍경,
그러나 그 풍경은 자기를 못 본다,
색깔 없이 형태 없이
소리 없이 향기 없이,

이 세상에서 그에게는 아픔도 없다,,
호수바닥한테는 바닥이 없고
기슭에게는 기슭이 없다,
호수 물은 젖지도 마르지도 않았고
작지도 크지도 않은 돌 둘레에
스스로의 물결치는 소리에
귀먹은 파도는 낱개도 여러 개도 아니다,,

태양이 지지 않으면서 지고
알아내지 못하는 구름너머 숨어있지 않은 채 숨어있는,
본래 하늘 아래 하늘 없는 모든 것-

분다는 이유 이외에는 아무런 다른 이유 없이
바람이 구름을 몰고 다닌다,

일초가 지나가고
두 번째 초
세 번째 초
그러나 그것은 오직 우리의 삼초일 뿐,

중요한 소식을 가진 사자같이 시간은 급히 달려갔다,,
하지만 그것은 우리의 비유일 뿐
그의 서두름이 불러일으킨 상상의 인물,
그리고 비인간적인 소식,

이 시- 는 쉼보르스카는 폴란드 시인이 쓴 시- 로 노벨문학상을 받은 작품이다, 그는 1023년 출생으로 1996년도에 상을 받았다, 그가 쓴 것- 뿐만이 아니라 다른 시인들의 것도 같은 경지에 있다,,그가 상을 받은 것은 그만한 자격이 있었다- 치고 그 보다 심사의원들의 수준이 놀랍지 않은가? 그러한 작품을 노벨상으로 추천하려면 그들도 같은 경지에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들조차 깨달음과 해탈이 사고에 기본적인 바탕으로 되어 있는 것이다, 그것은 언제나 무한한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그들이 비록 그것을 쉽보르스카처럼 시- 로 표현하지는 못해도 작품의 의도와 가치를 바르게 평가하는 수준에 있다, 그러한 경지에서는 모든 것이 보이고 알게 되어 있는 것이다, 우리도 그들처럼 인간적인 완성이 먼저 되어야 한다, 이 시- 는 해탈의 자유와 독창적인 가치가 어떻게 발현 되었는지를 보여 준다, 아무리 지식으로 머리를 채운 인문학 교수라고 하여도 이 시- 의 함축된 진가를 알아내지 못한다, 보이는 말을 이해하기도 급할 뿐- 의도와 가치를 알 수가 없는 것이다, 그들은 오직 말이라는 지식을 배웠을 뿐 시- 를 보고 아는 지혜를 배우지 못하였던 것이다, 항아리 속에만 안주하면 밖의 수준을 알지 못한다, 주의하여라- 병든 닭은 병든 달걀을 품기 마련이다, 이참에 세계적인 시- 들의 올바른 분석과 평가가 있게 되기를 기대 한다, 한국에 잘 알려진 배꼽의 저자이며 정신적 구도자인 오쇼라즈니쉬가 지식만 설파하는 그들이 왜? 환자이고 병자일 뿐-이라고 하였는지 알만하지 않은가? 이 시- 는 깨달음과 해탈의 지혜를 체득한 자-만이 안다, 시- 는 지식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지혜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이- 시는 보다 많은 설명과 지면의 제약 때문에 맨 나중에 자세한 ( 해설 )을 하기로 한다, 그대는 알리라- 해탈한 노시인으로부터 보다 바르고 정교한 언어를 사용하는 법과 위대한 자유의 가치를! 위대한 창조의 가치를!,,,,

참고-
자! 나는 위에 명료한 해탈의 지혜로 아는 몇가지 사실을 설명하였다, 더러는 위대한 인물의 기사와 글에다 아주 쉽고도 간단하게 설명을 겯들여 놓았다, 그대는 그러한 글에서 예와 설명을 읽고 쉽게 이해하며 안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그대의 인식에 안다는 착시현상을 만들어 놓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대는 여전히 내 말의 설명과 그들의 의도를 모른다, 왜냐하면 그대가 배우고 익힌 말이라는 지식을 통하여 안다는 사실은 지혜로 안다는 사실과 다르기 때문이다, 지혜로 안다는 것은 스스로 그것을 아는 동시에 객관적으로 알게 되었을때 안다는 사실로 정의하는 것이다, 그대는 세계적으로 위대한 그들의 다른 글에서 그들의 내면과 의도를 알아야 한다, 그와 같은 사실을 알려면 그들과 동일한 수준에 있어야 한다, 그들과 같이 깨달음과 해탈에 도달하여 있어야 한다, 그러한 상태가 아닌 그것은 여전히 혼자만의 추측이며 억측일 뿐이다, 자신을 알아서 그것을 아는 앎의 지혜가 아니기 때문이다, 말은 하나의 가면,,,보다 중요한 것은 내면을 아는 지혜이다,

( 38 ) 인터넷 정보 참고-

세계에서 위대한 사람들이 모두 우울증을 앓았다는 것을 예로 들기 전에- 보다 객관적인 사실을 추가한다, 미국 일간지 USA투데이는 최근 심리학자 리자 메초이안은 “똑똑한 여성이 우울증 걸린다”고 그가 쓴 책에서 주장했다,,,이어 예일대 심리학자 수잔 놀른-혹스마의 책 ‘생각이 너무 많은 여자(Women who think too much)’를 인용해,,“여성이 남성보다 무엇이든 더 많이 고민하고 꼼꼼히 따지는 성향이 있기 때문에 쉽게 우울증에 걸린다”고 설명했다. 정신-분석학자 놀른- 나한테 혹스마는 자신의 책에서 여성이 한 가지 사안에 대해 지나치게 많은 짐작과 부정적인 추측을 하는 등 과도한 생각을 하는 것을 하나의 병으로 정의했다고 한다. 과연 그럴까 하고 나한테 물으면? 원- 천만의 개똥 같은 말씀이라고! 그것은 똑똑하거나 바보이거나 “나는 생각한다- 그리고 존재한다!“ 라는 말처럼 누구에게나 있는 것이며, 누구나 상관없이 오는 것이라고 간단 명확하게 말해 줄 것이다,

우울증은 삶의 길에서 누구도 예외 없이 걸리는 정신적 고통의 한 증상이다, 다만 사람마다 느끼는 차이에 따라 그 고통의 깊이에서 차이가 날 뿐이다, 어떤 사람는 짧게 느끼고 어떤 사람은 깊게 느끼며 빠져 나오지 못하는 것이다, 그렇게 우리들의 삶에서 지나가다 스스로 걸리고 치매까지 이르는 것이다,,세계에서 위대한 사람들 중에 우울증이 걸린 사람들은 누가 있으며 어떤 사람들일까? ‘미국 대통령 에이브러햄 링컨, 영국의 소설가이자 비평가 버지니아 울프, 미식축구 선수 라이오넬 엘드리지,미국의 극작가 유진 오닐, 위대한 음악가 베토벤, 오페라 가수 이탈리아의 게타노 도니제티, 작곡가 로베르트 슈만, 세계적 문호 레프 톨스토이, 불세출의 소련 남성 무용수 바슬라프 니진스키, 영국의 시인 존 키츠, 미국의 극작가 테네시 윌리엄스, 화가 빈센트 반 고흐, 만유인력의 아이작 뉴턴, 어니스트 헤밍웨이, 미국의 여류시인 실비아 플라스, 천재적인 과학자이며 예술가인 미켈란젤로, 영국의 명재상 윈스턴 처칠, 영화배우 비비안 리, 미국의 야구선수 지미 피어설, 최연소 오스카상 수상 배우 패티 듀크,영국의 소설가이자 시인 찰스 디킨스. 기타 등,등 수 없이 많다, 내가 왜? 이렇게 많은 위대한 사람들을 예로 드는 것인지 현명한 사람은 안다, 물론 스스로 안 밝힌 사람은 이렇게 말한 사람들보다 훨씬 많다, 이들의 공통점은 심각한 고통으로 우울증을 겪은 사람들이다, 그렇게 우울증을 앓았지만 스스로 그것을 이겨내고 각자의 분야에서 위대한 성공을 거두어 자신의 삶을 풍요롭게 만들었다. “피할 수만 있다면 정말로 이 고통스러운 병을 피하고 싶다.” 고 한 빈센트 반고흐,,”내가 이 병에 걸린 건 정말 내 잘못이 아니다. 나와 같은 고통을 겪고 있을 수많은 다른 사람들 생각에 나는 잠을 이루지 못한다.” 빈센트 반 고흐가 자신의 귀를 자른 후 정신병원에 입원하여 동생 테오에게 쓴 편지의 한 부분이다. 윈스턴 처칠은 불안한 억제형 우울감에서 탈출하기 위해 유화를 그렸다. 그는 자신의 우울증을 “my black dog (나의 검은 개)”라고 하였다. 그대는 진정 놀라지 말라!, 美 역대 대통령 절반이 ‘우울증’을 알았으며 그것도 스스로 밝힌 숫자이다,

( 39 )
이러한 위인들이 당시에 좋은 방법과 치료를 받지 못해 오랜 시간 고통을 당했다고 했지만 내가 알기에 그것은 오히려 그들에게 보험이 되고 사고의 발전과 창조의 약이 되었다, 처칠은 유화를 그리면서 ‘검은 개’가 사라져 가기를 기다렸다. 또, 미국의 소설가 호손은 우울증으로 12년이란 오랜 세월동안 집 밖으로 거의 나가지 않았다고 한다. “나는 사회로부터 격리되어 버렸다. 무슨 일도 나에게는 의미가 없어져 버렸다. 나 자신을 감옥 안에 감금해 버렸다. 이곳에서 나 자신을 꺼내 줄 열쇠가 보이지 않는다.” 이렇듯 절망적이었던 호손은 우울증이 치료된 후 계속 걸작을 발표하였다. 여기의 글에서 나의 경험과 유사한 내용이 있다, 이것이 우울증에서부터 깨달음의 해탈과 연관되는 단서이자 정확한 기록이다, 저명한 역사가 조슈아 울프 쉥크는 링컨의 우울증에 대한 새로운 분석을 내놓았다. 지금까지 링컨의 우울증은 가벼운 역사의 에피소드로 취급 됐을 뿐이었다. 어려운 가정 형편과 어린 나이에 여읜 어머니에 대한 연민, 그리고 아버지에 대한 분노가 뒤섞여 우울증에 시달렸다는 심리학적 분석이 대세를 이뤘다. 쉥크는 우울증이야말로 링컨의 본질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링컨의 우울증은 매우 심각해 실제 26세 때와 32세 때에는 거의 자살직전에 이르기도 했다”며 “링컨은 (우울증 환자)의 참담함을 충분히 알고 있었고, 여기에서 벗어나기 위해 죽기 살기로 일했다”고 지적했다. 쉥크는 “바로 이 노력이 그를 빈농의 아들에서 변호사, 국회의원, 그리고 위대한 대통령으로 만들었다”고 말했다. 우리는 이러한 부분을 우울증으로부터 깨달음과 해탈의 사고로 반전하는 포인트로 삼아야 한다, 스스로 자신의 그것을 넘어섰기에 그곳에 내재된 최고의 댓가인 해탈의 경지를 얻어낸 것이다, 무엇보다 자신을 알았기에 위대한 인간적 가치가 나타났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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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 글은 우울증으로부터 깨달음을 얻고 해탈에 도달하여 창조의 지혜가 도약을 하는 과정이다, 그것은 우울증을 겪다가 시- 로부터 깨달음을 얻고 해탈에 도달한 나의 경험과 동일하다, 나는 30대 후반에 깨달음을 자각하고 해탈에 이르러 끝임없이 밀려드는 행복의 만끽함에 더 이상 욕심도 없이 세월을 보냈다, 유유자적하며 시간을 행복한 바람처럼 보냈다, 스스로 발견한 해탈의 빛! 오직 그것 하나로 나의 인생 전반에 걸쳐 광명으로 보상받은 느낌이었다, 그리고 나서 천천히 인식을 헤아려 보니 세계의 저들은 그러한 과정을 겪으며 자신만의 고유함을 발견하고 목적하는 바- 를 쉽게 이루면서 위대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것은 그들의 글과 작품을 보면 그대로 드러난다, 내가 그때의 기억을 더듬으며 이 글을 쓰는 것은 그대들을 불행하게 만드는 인식의 조건을 알기 때문이다, 삶의 가치에서 나를 모른다는 것은 그처럼 불행하다는 것이다, 동시에 그것을 알게 되면 세계의 위대한 저들처럼 그 무엇도 스스로 할수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위의 글은 그러한 길에서 가장 문제가 될수 있지만 동시에 해탈의 그 길에 가장 가까이 있는 우울증으로부터 설명하는 것이다, 우울증은 인간적 가치의 방법을 시도하고 깨달음을 자각하면 해탈의 경지로 인식이 바뀌어 진다, 그때에 비로소 그대는 알게 되리니- 하고 싶은 무한하고 자유로운 것을 얼마든지 성취할 수 있게 된다, 그러나 그대는 기다려야 한다, 나는 아직 그렇게 되는 방법을 말하지 않았다,,

( 41 )
나는 우울증으로부터 어떻게 깨달음을 자각하고 해탈의 그 길에 도달하게 되었을까? 그 말을 하기 전에 나의 이력을 먼저 헤아려 보고 그 길로 들어 가는 길이 현명하고 구체적이고 객관적이다, 참고로 이 글에 나오는 내 성적표는 객관적 사실을 더 하기 위하여 언제인가 그대로 공개할 것이다,

무엇을 알아야 할 것이 아닌가?,,,

이 글을 읽는 사람들의 이해와 설득력을 돕고자 여기에 내 어린 시절을 공개한다, 그리하여 어떠한 선입견과 편견을 느끼지 않고 받아 들이길 바란다, 조금 부끄럽지만 그대에게 내 경험의 사실적 과정을 아는 것 보다 빠르고 나은 소통은 없으니까 말이다, 실제로 좋은 견해보다 도움이 되는 것은 경험에서 우러 나온다, 내 글은 받아 들이는 자세에 따라 달라지기에 자신의 경험처럼 유츄해 보기 바란다, 내 어린 시절은 바보와 같았다,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지- 도무지 생각이 앞으로 나아가지 않았다, 생각 할 줄 모르는 백치였다, 초등학교 성적은 형편이 없었다, 공부란- 아무리 가르쳐 주어도 이해가 안되었다, 다른 학생들은 벌써 알고 있었지만 나는 아무리 가르쳐 주어도 이해하지 못하였다, 무엇보다 생각이 나오지 았았다,,그 말들은 밑 빠진 항아리처럼 머리에서 잠시- 멈추었다 무력감으로 빠져 나가는 바람 같았다, 보다 집중하고 신경을 썼지만 언제나 머리속은 멍~ 하고 하얀 상태에 머물고 있었다, 아무리 알려고 끙끙 거리고 생각해 보지만 헛- 수고였다, 초등학교 5학년 말이 되도록 어려운 한글은 읽고 쓰는 것이 부담스러웠다, 시험을 보면 평균 30점 이상 나오지 않았다, 사실 그것은 안다기 보다 비숫한 것을 찍은 것이다, 어쩌면? 하는 심정으로 연필을 굴려 점수를 기대 하였는가 하면, 시험이 끝나면 이름을 안 쓰고 남의 시험지들에 끼워 내는 방법도 활용하였다, 나에게 관심없는 선생님을 은근히 믿어 보는 실수까지 포함해서 말이다, 공부에 흥미를 잃어버린 나는 결국 땡땡이를 까며 며칠씩 학교에 가지 않았다,

( 42 )
선생님도 나에게 신경 쓰지 않았다, 아무리 가르쳐 주어도 이해하지 못하는 나를 의아하게 생각하였으리라,,나는 6년 동안 숙제를 해 간 적이 거의 없다, 나보다 나머지 공부가 시간의 매듭을 매느니- 내일은 오는 것이다, 그것은 선생님과 내가 은밀하게 맺은 약속처럼 편리하게 지내는 방법이었다, 함께 나머지 숙제를 끝마친 친구들이 그것을 나에게 가르쳐 주었어도 이해하지 못하고 베겼다, 어둡기 전에 선생님이 우리를 집으로 보내려고 교실로 들어 오면 그렇게 하루가 끝났다, 선생님도 다른 방법이 없었다, 나는 키가 제일 작은 편인데도 6학년 쯤에는 맨- 뒤 책상에 앉았다, 다른 학생들의 공부에 방해가 되지 않는 것 만으로도 도움이 되었기 때문이다, 성적표는 가끔 미가 1개 섞이고 대부분양 2개, 가 4개, 나는 초등학교 6학년까지 반에서 꼴찌를 벗어나지 못했다, 시험지에 이름을 안 써 낸 적이 많았으니 전교에서 꼴찌였을 것이다, 생각과 행동은 기어 들어 가고 위축되었다, 왜? 나는 저들처럼 말을 이해하지 못할까? 왜ㅡ나는 그렇게 공부를 하지 못할까? 그것들은 나를 움츠러들게 하였다, 말 한마디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는 지능을 참- 희한하게 생각하였다, 초등학교 6년동안 지식을 머리에 넣은 것이란 유치원에 다니는 아이가 몇 개월만 배워도 아는 한글을 배운 것과 알파벳 숫자를 알게 된 것이 전부이다, 사실 그것만 해도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모른다, 이해도 되지 않는 내 머리에 더 이상의 지식을 넣는다- 는 것은 악몽의 연속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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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졸업식 날- 나는 졸업장을 타기 위하여 학교로 갔다, 그것마저 못타면 나중에 꽤나 허전하고 섭섭할 것 같았다, 6학년 말- 47일째 학교를 가지 않고 땡땡이를 치던 그 사이 담임선생님이 바뀌었다, 새로 온 당임 선생님은 나를 보고 누구냐? 고 물었지만 같은 반으로 증언한 친구들의 도움으로 졸업장을 받았다, 그렇게 졸업장을 받고 나는 초등교육의 마지막 종을 친 것이다, 공부,,지식,,그것을 모른다는 것이 무엇인가 모를 어두움을 가슴에 남겼지만 무지한 나의 머리는 어떤 의미도 없었다, 졸업장을 받아 유종의 미를 거두게 된 것만 해도 천만 다행이었다, 공부여~ 너는 이제 끝이다- 나에게서 영원히 꺼져 버려라! 공부라는 것, 지식이라는 것이 마음의 족쇄를 풀어 헤치고 멀리 날아 갔다, 사회에서 필요한 최소한의 과정마저 알지 못한 것이 조금은 두려웠지만 혼자만 갇힌 유리벽처럼 마음에 벽을 쌓았다, 나는 현실로 돌아 가고 있었고 다른 방법은 없었다, 어린 나에게 가난하고 부담스럽던 환경은 미래가 그려지지 않았다, 우선 먹고 사는 것부터 문제가 되었다, 어떻게든 기술을 배우고 돈을 벌어야 했다, 나는 어린 나이에 직업 전선에서 돈을 벌었다, 이제부터 내 인생의 힘은 오직 돈- 경제력!,,그것만이 무지한 나를 완전하고 행복하게 해 줄 것이라고 믿었다, 정말 열심히 돈을 벌었고 그 밖의 관심사는 없었다, 내 머리에 맞지 않는 어렵고 훌륭한 지식은 돈이 많거나 똑똑한 머리가 있는 사람의 적성에나 맞는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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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은 욕망들은 언제인가 오게 될 희망으로 억제하고 견디며 나아갔다, 내 인생에 목표란 오직 단 하나- 열심히 돈을 모아서 집을 사고 결혼하는 것이다, 돈- 이외에는 어떤 것도 생각하지 않으려고 했다, 또 다른 어떤 선택을 한다는 것은 미래를 망하게 하는 사치였다, 일상의 모든 문제는 가슴속으로 묻어 버렸다, 돈을 벌려던 탐욕이 지나쳐 머리의 한계를 조롱하고 인격적 모독을 감수하게 하였지만 돈에 끌려가는 사회적으로 통하는 센스를 편하게 받아 들였다, 그것은 내 머리의 모자람에 대한 무기력과 열등감까지 함께 인정하게 만드는 서글픈 딜레마였다, 나의 삶이여!,,그리 행복하지도 못한 생활을 하면서 미래라는 것이 오직- 돈 밖에 보이지 않다니!,,하지만 다른 무엇이 있다는 말인가? 그것은 인생에 완전한 것 같았지만 까닭 없는 의문점을 던져 주었다, 언뜻- 기억의 저편에 묻어 버린 공부라는 놈이 뇌리를 지나가면 부담을 더하여 주었다, 알길 없고 준비할 수 없는 미래의 불안이 머리에 서성이는 것은 불쾌하기 그지 없었다, 갑자기 어려운 문제가 닥쳐와 내 머리를 조롱하고 압박하면 어찌해야 할까? 바보처럼 말도 못하고 당하기만 하는 것일까? 그런 생각이 불길처럼 일어 났다- 사라지며 세월이 흘러 갔다, 어느새 나이가 성인을 넘고 사회를 바라보는 시각이 조금 편해진 것 같은 느낌이 들자- 지난날 던져 버렸던 공부에 대한 동경이 다시금 기억을 깨고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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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에 대한 갈망이 늦 겨울의 잠을 깨우고 달콤하게 속삭였다, 더 늦고 나이 먹기 전에 공부를 해야 한다고 재촉한다, 아지랑이가 대지 위로 나와야 비로소 봄이 시작되는 것이다, 나는 묵묵하게 겨울이 가기를 기다렸다, 그러다가 봄이 되면 까맣게 잊어버리고 아무일도 없던 것처럼 지나가 버린다, 가끔 이런 생각도 들었다, 어떻게든 공부만은 하고 싶었지만 지난 날에 겪었던 내 머리의 한계를 떠 올리며 의심하였다, 초등학교 내내 꼴찌만 하던 부담을 버리지 못하고 무거운 열병으로 가슴을 앓았다, 그것은 늦가을에 시작하여 겨울로 이어지면서 내 인생의 항로를 서글프고 예민하게 만들었다, 그것은 차거운 계절의 변화처럼 나를 주눅들게 하였다, 초대하지 않은 공부라는 불청객이 찾아오면 무기력에 지친 상처가 기억에 응어리를 만든다, 나같이 무엇을 모르고 막연하게 살아가는 사람은 기본적인 상식이라도 알아야 하는 것이 아닌가? 무엇인가 모를수록 두려워지는 사회 변화와 제도, 문화, 관습, 등-은 배움을 통하여 대응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사회 구성원으로서 기본적인 소통마저 안 되는 막연한 두려움으로 나는 때때로 절망하였다, 그것들은 머리에서 먹구름처럼 떠오르다 천둥처럼 사라졌다,,따스한 바람을 느끼던 나는 굳은 결심을 하고 꾸역 꾸역 갈등의 산을 넘어 갔다, 그래- 나는 옛날의 어린 내가 아니다,,이 정도 나이쯤 되면 웬만큼 머리가 돌아가지 않을까? 해보지 않았지만 어쩌면 공부를 잘 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나도 남들처럼- 아니 그들보다 열심히 하겠다는 욕심으로 봄이 오기를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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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작 20살을 넘어 성인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하지만 공부를 한으로 남겨 두는 것은 돌덩어리를 안고 사는 것이다, 나 같이 바보같은 사람에게 찾아 올지도 모르는 행운을 놓치고 싶지 않았지만, 혹시 미래에 있게 될지도 모르는 성공을 주저 앉게 만들 것-을 생각하면 공부만은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나이 먹은 사람이 공부한다는 창피는 얼마든지 감내하고 싶었다, 나는 돌아가지 못하는 머리의 한계를 열어 보기로 결단을 내렸다, 나이가 많은 것을 성인으로 확인하고 공부는 충분히 할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일단 검정고시를 목표로 정하였다, 낮에는 일하고 야간으로 공부하였다, 인간적인 가치를 유지하고 인격적인 대우를 받기 위해서 반드시 공부를 해야 한다, 더구나 지식에 가격을 매기고 인격에 지식을 매기는 사회이다, 지식으로 자신의 이익을 지키고 찾아내는 사람이 되고 환경에 부응하는 자가 되리라,,,아니? 그렇게 공부를 못하더라도 최소한 인간적으로 쪽 팔리지 않는 정도라도 되리라- 자신에게 최선을 다하는 노력을 보여 주는 것은 보다 나은 위안이며 도리이다, 그것이 언제인가 자신에 대한 원망과 후회에 대한 증거라도 되는 것이다, 자신을 형편없고 초라하게 만들었던 공부를 생각하면 반드시 그것은 정복해야 하는 선수처럼 승부욕에 불타고 있었다, 이제는 나도 커서 성인이 되었다, 이제부터 지식의 칼을 갈아 자신을 모욕하고 능멸한 돌 머리에 복수하여 주리라- 분명히 보고 아는 것이 많고 중학생 정도의 지식쯤은 이해되기도 쉬울 테니까,.,무엇보다 나이를 먹은 만큼 똑똑해져 있는 것이 상식일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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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피가 날 정도로 열심히 공부를 하였다, 그러나 1년을 넘기지 못하고 공부에 실증을 느껴 가고 있었다,,암기는 그럭 저럭 뒤를 따라가고 있었지만 계산은 이해가 안 되었다,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 머리에 한계를 느끼고 허탈해져 갔다, 그토록 희망하였던 공부- 그러나 미련한 내 머리에 지식을 넣는다는 것이 얼마나 무모한 짓이던가,,인간은 태어날 때 지식의 범위와 한계가 머리에서 정해지는 것일까? 나는 어쩔수없이 사회가 규정하는 블루칼라였다, 지능과 같은 사회 계급을 주홍글씨처럼 가슴에 새겨야 했다, 중학 검정고시 보는 날- 시험을 보러 갔지만 그것은 보나마나 뻔-하였다, 시험에 합격할 실력도 없었지만 컨닝을 할수도 있다고 생각하였다, 혹시나 모를 나중을 위하여 졸업장이 필요했다, 내 옆에 앉은 똘똘하게 보이는 학생한테 컷-닝을 부탁하고 시험을 치루었다, 빌어먹을- 이제 와서 한다는 짓이 고작 컷-닝뿐이라니!,,어린 아이한테 지식을 구걸하던 그 말은 왜 그렇게 입에서 편리하고 쉽게 나오던지,,낮 뜨거운 무기력과 자괴감은 정말 엿 같은 기분이었다, 그동안 학력에 의한 열등감 때문에 얼마나 상심하였던가? 그러나 제대로 지식을 배워 보기도 전에 등줄기에 식은 땀만 줄줄 흘리고 말았다, 인간은 지식이 있어야만 번쩍거리고 폼-나게 살아 간다, 나는 사회 안으로 한발도 들어가지도 못한 채 우두커니 그 자리에 서 있었다, 나를 훔쳐 보고 있는 누가 세차게 밖으로 끌어 당겨 버리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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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이후- 나는 공부에 미련을 두지 않았다, 괜시리 미래까지 걱정하게 만드는 어둡고 씁쓸한 머리의 업보여-..무엇이 너를 그렇게 만드는가? 본래 새하얀 희망은 새까만 절망으로부터 탄생하는 것이다, 나는 본래에 그것들이 있었던 기억의 저편으로 멀리 던져 버렸다, 인생에 가장 뜨거운 20대 청춘은 깨진 항아리처럼 건조하게 흘러갔다, 때때로 무지의 흔적으로부터 얻게 되는 머리의 한계는 다시금 나를 위축시키며 무력감을 느끼게 하였다, 나는 열심히 돈이나 벌어서 경제적으로 삶의 위치를 찾고 포장해야 한다, 지식은 하나도 가질 수가 없으니 고생하는 운명이 팔자인가 보다, 모든 것은 돈으로 귀결되고- 그것만이 인간적 차이를 증명하는 보증 수표이다, 나같은 사람도 남한테 아쉬운 소리 안하고 살아가게 될 것이니- 한심한 그대여! 그것은 무엇보다 공평한 것- 그 밖에 무엇이 그대를 행복하게 하리오! 나는 열심히 돈에 매달렸다, 먼저 집부터 마련해야 한다는 일념으로 살았다, 빨리 집을 마련하려고 가능한 씀씀이를 줄였다, 값이 싼 라면을 박스로 쌓아 놓고 먹었다, 2년째 몸을 혹사시켜 얻은 것이 더러는 위장을 꼬이게 하고 병도 안겨 주었지만, 그 정도는 약만 먹으면 되는 간단한 것이었다, 쌓여 가는 돈- 그것은 눈에 보이는 확실한 사실이자 가장 좋은 기쁨이었다, 가장 쉽고 편리하게 몸으로 때우는- 방식은 그리 어려울 것도 없는 삶의 방식이었다, 나는 한 가지 목표에만 집중하였다, 그것은 미래에 대한 절망에 안심을 만들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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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가장 뜨거운 한철이 왔다,,수줍게 피어나는 열정은 몸의 각질을 벗어 버리며 밖으로 나왔다, 그것들은 보다 은밀하고 향기롭게 욕정을 드러내고 짙은 화장에 도취하였다, 이성보다 훨씬 나은 감정의 그것들은 결혼에 대한 욕망으로 인생을 음미하게 하였다, 단지 그뿐- 내 청춘에서 가장 강렬한 그것들은 신기루처럼 지나갔다, 불완전하고 열등적인 습성 때문에 언제나 구경꾼으로 남았던 것이다,,붉고 푸르게 피어야 하는 청춘은 긴 한숨을 붙잡고 바람처럼 사라졌다, 어찌되었건 청춘의 세월은 그렇게 빨리 가는 것이다, 나에 있어서 가장 확실하게 보장하는 것은 돈이다- 나는 오직 돈밖에 모르는 사람처럼 스스로 구속하는 환경을 만들었다, 잠재되어 있는 절대 가치는 본능적으로 필요한 최소한의 것조차 허물어 버렸다, 삶의 가치가 돈의 가치로 정해지면서 가장 좋은 젊음은 망각의 구덩이에서 실종되었기 때문이다, 싱싱한 젊음을 돈으로 바꾸고 미래의 목표에만 집중하였다, 드디어 나의 가장 큰 목표이던 집을 마련하는데 성공하였다, 그것은 사회에서 나를 가장 높여 주고 확인시켜준 대사건이었다, 단 하나의 목표를 위하여 전력을 다한 작품이었다, 그처럼 가슴 뿌듯한 순간이 어디에 있었으랴! 가슴 저 아래에서 풍선처럼 퍼지는 웃음과 행복한 꿈이 눈앞에서 다가오며 오직 나만을 위해 축배를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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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 남산 꼭대기에 올라 갔을 때- 눈아래 펼쳐진 수없이 많은 집들이며 건물은 가슴을 누르며 부담을 주었다, 집을 한채 마련하려면 인생 전부를 포기해도 모자를 것이다, 그 길로 가는 도중에는 약간의 방심도 자유도 허락되지 않을 것이다, 나는 더 이상 움직이지 못하는 가난한 현실에 숨이 막혀 왔다, 저것은 내 인생에 도저히 이룰 수 없는 꿈이다, 훌륭한 저들은 보란 듯이 나를 비웃으며 무시할 것이다, 아무리 고생해도 소용없는 나의 짧은 다리는 태어나면서 정해진 것이다, 저들을 따라가는 것이란 지붕위에 닭을 쫒아가는 개나 다름없다, 아득한 절망이 뇌리를 스치면 남은 자존심은 호되고 쓰린 상처를 가슴에 남겼다, 머리는 안돌아 가고 경제적으로 안되면 평생 거처가 되는 집이라도 있어야 하는데,,그곳에 까지 생각이 이르면 걱정이 태산이었다, 그것이 눈앞에 현실로 이루어진 것이다, 길고 긴 무지와 노동의 세월이 가고 행복을 손에 쥔 것이다, 집을 장만하니까 생각이 달라 진다, 언제나 처음처럼 봄날의 꽃처럼 시작되었다, 나도 중간 레벨의 딱지를 받고 사회 구성원으로 선택된 것이다, 너무 많은 행복이 느껴지니까 주변의 현실이 나보다 가엾고 안타깝게 보인다, 이처럼 인간적 자부심과 우월감을 북돋아 주는 것이 없었다,,그때부터 나는 어깨를 활짝 펴고 거리를 다닐 수 있었다, 거리에 지나가는 사람들을 향해 큰소리로 외치고 싶었다, 사람들아- 나는- 내 집을 가졌다- 나도 집주인이다!,,나는 집주인처럼 위대하게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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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새 30대 후반에 접어들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변하지 않았으며 생각하는 것도 무지나 다름없다, 무엇인가 의미심장하게 연결되는 종적인 사회 구조, 그러한 환경 속에서 뒤섞여야 하는 것은 언제나 두려움으로 다가왔다, 남들이 다 아는 것을 모르고 앞에 닥칠 것을 모르니 늘 조심스러움과 경계가 뒤를 따라 다녔다, 무지함이 부르는 미래는 긴장과 불안감을 데려오기 일쑤였다, 그것은 과거의 반영이나 다름 없었다, 정신차리자- 지금은 아니지 않은가- 나에게는 집이 있다, 과거의 아픈 기억들은 잊어 버리자! 그렇다- 멋진 인생이 시작하고 있다, 나는 여기에 새로운 그림을 그려 넣을 것이다, 결혼? 가정? 미래? 지금은 아니다, 지금은 행복만 있을 뿐이다- 만약에 신이 있다면 나에게 찾아 온 이것은 지켜주어야 마땅하리라,, 집- 그것은 거대한 목표였다, 경제가 해결된 것이다, 짓눌리게 하던 무기력과 열등감은 사라졌다, 나는 떠오르는 풍선처럼 완전해지고 있었다, 나만을 위한 시간들이 꿈처럼 흘러갔다, 행복에 빛나던 시간이 겨우 두해가 지났을까? 수많은 복에 겨웠는지 약간의 지루함을 느꼈다, 마치 행복한 잠에서 깨어나는 것 같았다, 일상의 여유를 즐기면서도 별로 개운하지 않았다, 등에 자라났던 두려움의 혹을 확인하는 사람처럼 불안전 하였다, 과분한 집- 그렇게 부족하지 않은 돈과 직업, 원하던 것들을 가졌지만 그것이 다는 아니었다, 그것은 나를 가장 행복한 길에 이르도록 하였지만 동시에 무엇인가 부족함을 느끼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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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들은 나의 행복을 지속하게 만드는 장치가 아니었다, 완전한 삶의 완성이 아니었다, 오직 그것만이 행복이라고 여겼다가 속아서 끌려 다닌 사람처럼 삶이 방향이 낯설어 진다, 시간이 갈수록 공허하고 허탈한 마음이 일어난다, 까닭없이 쓸쓸하고 미래가 걱정이 된다, 왜 그럴까? 내 인생에 더 이상의 목표는 없었다, 늘 절약하던 습관이 있었기에 경제에 대한 걱정은 없었다, 앞으로도 그렇게 살아가면 되었기 때문이다, 어떤 부족함도 없었다, 나를 초라하고 병들게 하던 머리를 말끔하게 만족시키던 집이 있지 않은가? 삶이 이대로만 유지된다면 어떤 걱정도 없었다, 어떤 아쉬움도 미련도 없었다, 새로운 어떤 것도 기대하지 않았다, 그런데 무엇 때문에 이러는 것일까? 무엇이 또 남아 있다는 것인가? 내가 모르는 무엇이 있다는 것인가? 행여나 나도 감당하지 못하는 그것이 조금이라도 마음에 남아 있다면 빨리 잊어버려라- 이보다 더 나은 행복이란 없다! 행복이여- 이대로 나의 품에서 느긋하게 안겨 있으리라, 미래는 변하지 않으리니 언제까지 그대로 있으리라-,,땀 흘린 노력의 보수처럼 좋은 것은 없다, 기나긴 겨울이 얼음을 녹이며 따스한 계곡으로 불어 왔다, 봄의 향연은 시작되어야 한다, 여기까지 온 것도 나에게는 너무 힘들고 버거웠다, 이것으로 만족하자! 혹시 너무 행복해서 배가 터져서 나오는 생각이 아닌가?,,그렇게 마음을 먹으니 나의 인생은 다시금 기쁨을 타고 밖으로 나아갔다, 온몸으로 기쁨을 들이 마시며 행복을 만끽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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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 충만한 행복은 거의 하늘에 닿았을 무렵까지 꺼지지 않았다, 환희가 절정이 되어 나를 이끌고 다녔다, 시간에 대한 개념도 돈에 대한 집착도 없었다, 다시금 가을이 지나고 겨울로 접어 들었다, 차가운 바람이 불더니 낙엽이 우수수 떨어진다, 계절에 대한 감정이 다르게 느껴진다, 그런데 이전에 느끼던 감정이 아니다, 계절이 변화를 삶의 변화처럼 받아들이고 있었다, 하늘처럼 만개하였던 행복은 잿빛 겨울의 지루함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무엇보다 자신을 믿게 하였던 일상의 가치들이 허물어지고 있었다, 행복이 스스로 빛을 잃는 것에 대하여 의아했지만 까닭을 몰랐기 때문에 어쩔수 없었다, 일상에 다른 변화가 없었기에 그것은 쉽게 이해되지 않았다, 나를 가슴 벅차게 북돋아 주던 행복이 2년도 넘어가지 못하고 쓰러져 가고 있었다, 도대체 행복이란 것이 집이며 돈이 아니라면 무엇일까? 청춘에 대한 아쉬움인가? 여자- 연애? 인생의 반쪽? 결혼과- 아이들? 그것은 급하게 하지 않아도 되었다, 절박한 것처럼 다가오지 않았다, 나이는 조금 많이 느껴졌지만 결혼은 나이 먹어도 할 수 있는 것이다, 집과 자동차, 직장이 보장되고 있었기에 나중에 해도 문제가 없었다, 그것은 친구라든가 술- 여자, 오락 등- 즐기는 것으로 해결되는 것도 아니었다, 씨도 때도 없이 나타나는 유령처럼 마음의 숲을 흔들고 가는 공허감은 감정을 나약하게 만들었다, 쓸데없는 번민과 망상을 만들고 차가운 바람을 불어 넣었다, 그렇게 흔들리는 감정의 굴곡을 한바퀴 휘돌다 사라지면- 서늘하고 불안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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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내 자존감을 움켜쥐고 나와 보란듯이 흔들었다, 뿌리 없는 행복, 견고 할 수 없는 이성, 쉽게 빠지는 감정의 변화를 영상처럼 보여 주었다, 행복한 사람에게 다가오는 불행은 당연하다는 것일까? 불길한 조짐이 나타나는 횟수가 잦아지면서 왜? 나는 이렇게 살아야 할까? 무엇이 행복이란 것일까? 도대체 인생이 무엇이란 말인가? 자신을 추궁하는 바보같은 대답이 메아리가 되어 돌아 왔다, 그러한 의문이 일상의 언저리에서 배회하며 삶의 중심을 흔들어 버렸다, 깊은 어둠이 마음속에 드리워졌다, 까닭 없이 일어나는 무모한 질문에 대답을 찾을수가 없었다, 자신을 몰아 세우고 스스로 나락에 빠졌던 적이 한두번이 아니다, 난생 처음 겪는 생각들 때문에 힘들어 했지만 방법이 없었다, 어떤 대책을 세울 수도 없었다, 그것은 무지의 방향으로 나를 이끌고 가며 같은 짓을 반복하였다, 헤어나 보려고 애써 노력을 하였지만 헛수고였다, 그럴수록 심신의 기력이 빠졌다,,나를 지탱하였던 무식한 용기도 자신을 구조하는데 도움이 안 되었다, 오래토록 그것을 끌어 않고 끙끙거렸지만 어떤 해답도 찾을수 없었다, 미천한 생각의 한계는 악화 일로를 걸어갔다, 어느덧 나는 무기력한 감정의 무게에 눌리고 갇히면서 우울증이라는 문턱을 넘어 가고 있었다, 빠져 나오기 힘든 생각의 늪에 빠지고 말았던 것이다, 며칠이 지나도 생각은 달라지지 않았다, 생각은 같은 자리에서만 뱅뱅 돌았다, 한달이 지나 갔지만 무기력하게 주저앉아 있었다, 나는 집밖을 한발짝도 나가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