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배값 인상은 공공의 적일뿐, 영국에서 본 담배값 문제

담배값은 사회적으로 얼마나 큰 의미가 있을까?

1. 극빈층과 국회의원의 동거

얼마 전 영국의 TV에서 흥미로운 프로그램을 봤다. 국회의원들과 그 부인들을 빈곤층 가정에 보내서 며칠간 같이 살게 하는 것이다. 영국의 중산층 이상은 대부분 단독주택 (House)에 살고, 빈곤층은 공동주택 (Flat)에 사는데, 이 프로그램의 제목은 그래서 ‘공동주택에 살아보기’다.

영국의 주요 세 정당인 노동당, 보수당, 자유민주당의 의원들과 부인들이 각각 한 가정에 보내지고, 그들과 함께 산다. 아이들을 돌보고, 음식을 하고, 장을 보러가고, 이웃들을 만나고, 정치인들에 대한 불평을 듣고, 또 그들에게 조언한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는 그들의 집에서 함께 먹고, 자고, 씻고, 생활한다는 것이다.

나이가 가장 많은 노동당 의원은 세 아이를 돌보느라 정신이 없었고, 보수당 의원은 무기력에 빠진 젊은 무직자 가장을 몰아부치기도 하고 또 용기를 북돋기도 한다. 자유민주당의 여성 의원은 정치인에 대한 불평을 쉬지 않고 늘어놓는 흑인 아줌마와 신경전을 벌인다. 모든 것이 해피엔딩으로 끝나지는 않지만, 이 짧은 기간동안 그들은 서로 소통하려고 노력한다. 한국에서도 이런 프로그램이 하나 있었으면 한다.

2. 빈곤층의 어처구니 없는 소비 패턴

이 프로그램에서 장을 함께 보러 간 국회의원은 놀라운 현장을 목격한다. 세 아이와 두명의 부부를 위한 장을 보는데 이것저것 아껴서 100파운드 (한국 물가로는 10만원 정도) 를 지출한 다음, 담배값을 40파운드 넘게 쓰는 것이다. 가장 저렴한 대형마트에 가서 그 중에서도 싼 것들만 골라담는 부인을 보고 연민을 느꼈던 의원은 이 장면에서 아연 실색하고 만다. 그리고 이것은 짧은 분노로 이어진다. 그는 따진다. 그러나 대답도 수세적이지 않다.

‘이건 우리에게 유일한 낙이고, 이건 필수품이다!’. 담배를 사자마자 그 부인은 마트 앞에서 열심히 다른 빈곤층 친구들과 담배를 피워댄다.

의원은 이어지는 장면들에서, 빈곤층들이 ‘얼마나 어처구니 없는 소비 패턴’을 갖고 있는지에 대해서 토로한다. 아마도 영국의 상당수 시청자들이 ‘저러니까 저렇게 사는데서 헤어나오지 못한다’고 맞장구 쳤을 것이며, 아마도 한국의 시청자들이 이걸 봤다면 더했으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어이없는 바로 그 장면, 아이들과 장을 본 카트를 옆에 두고 친구들과 수다를 떨며 열심히 (정말 열심히 공들여서) 가쁘게 담배를 피우는 그 모습이, 마치 산소가 부족한 어항 속의 금붕어가 잠시 동안 수면으로 올라와 가쁘게 숨을 쉬는 모습과 왠지 닮아 보였다고 한다면 너무 큰 과장일까. 바람직한 모습은 결코 아니라고 할지라도, 그들 자신이 아니면 이해해기 어려운 삶의 빈곤함과 이를 회피하려는 잠깐의 여유가 엿보인 것만은 사실이었다.

3. 담배값 문제

영국에서도 빈곤층, 저학력층의 흡연츌이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훨씬 높다는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또 대부분의 이 사람들이 유색인종이라는 점도 확실한 사실이다. 이들에게 담배값은 너무 비싸다. 프로그램의 그 부인은 아마도 4파운드 10갑을 샀을 텐데, 이게 영국에서 가장 싼 담배다. 대부분은 5-6파운드를 훌쩍 넘어선다.

영국에서는 전국민 무료 의료보험 NHS가 사회적으로 가장 큰 이슈이기 때문에, 술이나 담배를 즐기는 사람들에게 세금이 투입되는 것에 대해서 대단히 민감하다. 만약 흡연자들이 높은 발병율을 보이는 질병에 예산이 투입된다면, 담배를 피우지 않는 사람들의 세금을 흡연자들 스스로 악화시키는 건강을 유지하는데 투입하는 것이기 때문에 국가 정책상의 심각한 문제가 된다. 그 예산도 만만치 않다. 그래서 영국의 담배값은 상당히 높다. 문제는 이것이 빈곤층의 가계에 상당한 악영향을 주는 요인이라는 것이다.

그럼 담배값을 올리는 것은 금연 효과를 가져올까? 내가 예전에 한국의 보건복지부 자료를 본 바로는, 가격이 단기간에 급상승하고, 또 엄청나게 오르기 전에는 그 효과가 별 볼일 없다는 것이 정설이다. 금연, 혹은 애초에 담배를 피우지 않도록 하는 것은, 성장배경, 교육, 문화, 사회적 조건 등이 담배값보다 중요한 이유다.

담배를 유통하는 것, 피우는 것이 어쨌든 합법적인 사회에서 정부가 인위적으로 담배값을 엄청나게 올리는 것은 소득 격차에 따른 불평등을 가져온다. 설령 그것이 별로 좋지 않은 것이라도, 그것을 선택할 자유는 개인들에게 있고 그것이 침해받아야 할 이유는 상대적으로 명백해야 한다.

적어도 영국의 경우 이 이유는 흡연자들의 건강이 아니라 예산상의 불평등에 있다. 그러나 이런 경우 문제의 해결방법은 금연효과에 도움을 줄 만큼의 가격 상승과 더불어 흡연자를 줄이기 위한 다양한 정책들이 뒤따르지 않으면 안된다. 왜냐하면, 흡연자들의 상당수가 빈곤층과 저학력층이라면, 단순히 담배값을 올리는 것 만으로는 정책 효과가 나타나지 않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경제적으로 불평등을 가중시킬 것이 명백하기 때문이다.

지금 내가 사는 지역은 런던 동남부로 8-90%가 유색인종인, ‘영국에서도 가장 못사는 동네’ 중의 하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흡연율은 내가 봐도 압도적이다. 이들에게 담배값 인상은 금연의 이유라기 보다는 가계 부담의 원인일 뿐이다. 담배값이 없으면 다른 지출을 줄이지, 담배값을 줄이지 않는다.

4. 한국에도 매번 담배금지 법안이 논의된다

몇년전 한국에서도 담배값 인상을 두고 논쟁이 있었다. 그 즈음 한국에서 암 전문가로 잘 알려진 국립암센터 원장은 거의 모든 국회의원을 일대일로 만나서 담배 유통을 금지하는 법안에 서명토록 했다. 그런데 여기에는 일반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은 논리상의 에피소드가 숨어있다.

예를 들면, 애연가 중 한명이면서 개인적으로 퍽 괜찮게 생각했던 한 국회의원은 이 법안에 흔쾌히 서명했는데, 그 이유는 이 법안이 10년뒤 부터 효력을 발생하기 때문이다. 즉 10년간의 준비를 거쳐서 담배를 없애자는 것인데, 그 의원은 이렇게 말했다. “그게 10년 뒤에 꼭 시행이 될까? 만약에 이 법이 통과되더라도 10년 뒤에 정부나 다른 국회의원들이 부칙 조항만 하나 수정해서 시행 연도를 또 한 10년 뒤로 연기하지 않을까?”

법안은 항상 보건복지위에 계류중이다. 그리고 4년의 회기 임기가 끝나면 자동 무효화 된다. 그리고 선거 후 새 국회가 구성되면 이 원장님은 또 법안을 들고 국회에 나타난다.

그럼 원장님은 이 사태에 대해 어떠 입장일까? 사실 그분도 이런 점을 잘 알고 있다. 그분은 두가지 효과를 노리는데, 하나는 이 법안이 너무나 쇼킹하기 때문에 항상 언론이나 사회의 주목을 끌고, 처음보는 정치인들에게도 상당한 의미를 갖고 있다는 점이다. 두번째로는 그로 인해서 담배의 악영향에 대해 주의가 한번 환기되고 나면 법안을 통과시키지 않는 대신 암센터의 예산 지원에 후해지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당신들이 담배를 중단시키지 않으니까 암센터 예산이 이 만큼 더 필요한거다!’하는 것이고 국회도 할수 없이 동의한다. 만약 이 법안이 통과되면 원장님은 기뻐할까? 전혀 아니다. 아까 그 의원의 논리에 따르면, 원장님은 4년에 한번씩 할 수 있는 기회를 10년에 한번으로 연기당할 뿐이다.

몇년전 노무현 정부에서 담배값이 전격 인상될 때, 국무회의에서 강금실 장관만이 공개적인 반대를 표명했다. 그녀는 여러차례, 담배값마저 인상되면 안그래도 살기 어려운 서민들에게 큰 즐거움을 하나 빼앗아가는 셈이라는 입장을 밝혔고, 어떤 금연협회 같은 곳에서는 ‘저런 년이 법무장관’이라는 상욕을 퍼붓는데 인색하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러나 강금실의 입장이 영국같은 사태를 제대로 본 것이다.

그러면 한국의 담배값은 영국과 비교해 어느정도 일까? 물가와 환율을 감안해서 현재 영국의 담배값이 4파운드라고 치면, 한국의 담배값 2,500원은 2.5파운드 정도 된다. 3000원이 넘어서면 서민 개인이 아니라 가계에 부담이 될 것이고, 4,000원이 되면 빈곤층 생계에 실제로 심각한 피해가 나타날 것이다. 그러나 보건복지부에서 추산한 ‘실제로 금연 효과가 있는 담배값’은 몇년 전 기준으로 5000원이었고, 아마도 ‘용감한’, 그러나 ‘어두운’ 금연 보수주의자가 나타나면 이러한 가격상승을 추진할지도 모르겠다.(고 몇년 전에 생각했었다. 그게 아마 이번에 나온 6000원 주장의 근거인 모양이다)

5. 담배값, 얼마가 적당할까?

어느 정도가 적당할까? 아마도 두 가지 기준이 있어야 할 것 같다. 하나는 청소년이 쉽게 담배를 살 수는 없어야 한다는 것이다. 성인에 비해 여러가지 자유를 합법적으로 정당하게 제한받고 있는 청소년에게 흡연의 자유를 강하게 제약하는 것은 어떤 기준에서도 타당할 것이기 때문이다.

둘째로, 상한선은 물론 금연을 쉽게 실행하지 못한 서민, 저학력층, 저임금 근로자들에게 부담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지금 우리에게는 담배가 어떤 해악을 미친다는 보고서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담배를 끊게 하거나 시작하는 사람들을 줄이기 위해서 사회적으로 어떤 프로그램이 필요한지에 대한 것이다. 그것들은 얼마나 다양하고 효율적이며, 예산은 얼마나 들고, 그래서 그런 것들을 담배값 인상과 함께 추진할 준비가 되어 있는지를 따져 물은 뒤에야, 우리는 담배값 인상의 폭을 논의할 수 있다.

그 전에 일단 담배값부터 인상하자는 사람들은 공공의 적이다. 이런 경우 피해자는 그들 본인 뿐 아니라 가족들이 될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사회 경제적 불평등이 지금보다 나아졌다는 증거가 있거나, 혹은 정치가 그들에게 고된 노동 이후의 담배 한모금보다 더 많은 기쁨을 주기 전까지는 담배값의 인상은 공공의 적이다.